2021년 9월 14일

오늘 2021. 9. 14. 18:49

2021년 9월 14일 화요일

카페에서 각자 코딩하러 초면의 트친과 모인 지 두 시간, 강의는 하나도 듣지 않았다. 밀린 약속을 조율하고, 친구 생일 선물로 벼르던 커스텀 맨투맨을 제작하고, 학생들 첨삭 보강을 잡을 연락을 돌리고. 금요일까지 스무 시간 분량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영 손이 가지 않는다. 지금 해둬야 나중에 눈물 흘릴 일이 없으리란 걸 아는데도. 

그간의 업데이트 :

소식 0. 부트캠프에서 탈락했다. 첫 탈락자가 됐다.

열여덟 명 중 두 명이 탈락했는데, 한 명은 성적이 기준치에 한참 미달된 사람이고 한 명은 적당히 지각했던 사람이다. 둘 중 적당히 지각한 사람이 나야. 팀장은 "이 경험을 레슨삼아 다음엔 근태를 잘 지키는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했고, 이 말을 전해들은 다른 관계자는 코웃음을 치며 "명확한 기준이 없는 곳이므로, 개인의 탓으로 담아두지 말라. 입맛에 맞는 교육생들만 남겨두고 싶어 하는 곳" 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홍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고분고분한 교육생은 아니었지. 지각했다는 것 자체는 틀림없는 사실이나, 아파서 집에서 좀 쉬었다 가겠다는 것마저 근태의 불성실로 처리한다는 건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어쨌든 탈락했고, 사유는 근태였고, 적당히 스스로의 불성실함을 부끄러워하는 게 적당히 바른 태도일 것이다. 


소식 1. 인턴에 합격했다. 개발자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버니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올 것"이라고 했고, 사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디 그렇게 됐다. 만약 부트캠프를 계속 했다면 나는 이 포지션에 지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테니까. 수업과 시간이 겹쳐 면접도 못 봤을테고. 채용전제가 아닌 인턴십에 뭘 걸어보기 위해 부트캠프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이 다홍의 관성이니까.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정말 끔찍하게 쓰기 싫어서 그만둬버릴까 생각했던 포지션이었다. 어차피 안 될 줄 알았거든. 그런데 덥석 면접이 잡혔고... 생애 첫 기술면접을 보느라 발을 동동 굴렀고... 면접을 너무나 내 페이스로 봐서 찜찜할 정도였다. "나다운" 얘기를 실컷 했고, 이게 컬쳐핏 면접이었다면 누가봐도 합격이었지만, 나는 개발 포지션으로 지원했는데 개발 얘기는 너무 안 나왔는걸. 탈락하더라도 놀랍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합격하더라도 놀랍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합격하고는 사실 조금 놀랐다.

너무 좋은 곳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사실 그래서 무섭기도 하다. 나는 뭘 내려놓질 못하는 사람인데, 계속 이렇게 좋은 기회들을 잡아도 좋은가. 나는 어디에서건 바닥부터 시작할 각오로 겸허하게 내려가는걸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PD 준비를 하면서도 늘 고생길 없는 정도만 걷고 싶었고... 반대로 뭘 내려놓을만큼 좋아했거나 절실하지 않았단 얘기도 된다. 개발도 마찬가지여서, 사실 이제껏 지원할 데가 없었겠어. 누구나 아는 근사한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던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지. 그렇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느리적거리고 있었고... 그런데 그 첫 시작을 또 이렇게나 근사하게 해버리게 돼서... 나는 영영 뭘 못 내려놓고, 겸손하거나 바닥부터 시작하는 법을 못 배워버리는게 아닌가. 

어디냐면 DGMK이다. 스타트업 인턴 두 번 치곤 둘 다 좋은 곳들을 경험하게 됐다. 체험형이라곤 해도 이 경험이 꽤 좋은 경력이 되어줄 것이고... 혹시나 채용 전환이 될 수 있다면 가장 좋고. 재미있을 것 같다. 


소식 2. 재미있는 극들을 여럿 봤다.

황석정 배우님의 <일리아드>, 조승우 배우님의 <헤드윅>, 그리고 일요일엔 김시훈 배우님과 최정원 배우님의 <빌리 엘리어트>. 리뷰를 차근히 쓰기엔 힘이 좀 부쳐서 - 어딘가 진득하게 앉아서 생각을 정리할 에너지가 없어서 넘겨두고 있지만 쓰고는 싶다. 인스타그램으로 갈음하기엔 아쉬워서. 
더 보고싶은 것들도 있다. 일단 <하데스 타운>을 볼 예정이고... <카포네 트릴로지>도 보고 싶다. _에게 관극 경험을 영업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 스스로는 부정하지만 빌리 엘리어트가 왜 별로인지, 뮤지컬이 왜 별로인지 화장실을 갈 때 마다 생각하고 있다고 하면 그게 치인거지 뭐겠어. 카포네 트릴로지 쪽이 조금 더 _의 취향에 맞으려나 싶고. 
그러니까, 선전포고는 하지 못했다. 그것이 갑자기 덧없고 무용하게 느껴졌기도 하고... 어떤 좋아하는 마음 앞에선 뭐든 속수무책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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