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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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2015-10-12-12:50)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페이스북 헤비유저이면서도 십년째 꾸준히 싸이월드를 써왔던 것은 싸이월드가 내게는 '다락방'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나를 너에게 보여주지만 싸이월드는 네가 나를 찾아온다. 페이스북에서 말하는 것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광장'에 외치는 것이었고, 싸이월드에서 쓰는 것은 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친구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두 공간은 다른 호흡을 가지고 있었다. 교환학생 시절 내 페이스북을 본 친구들은 말했다. "넌 어디서나 재미있고 씩씩하게 지내는구나! 보기좋다!" 같은 때 내 싸이월드를 본 친구들은 말했다. "많이 힘들었지, 하지만 그대로도 괜찮아." 페이스북에 올리는 이야기들이 죄다 거짓말로 포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가깝고 먼 친구들 몇백 명의 타임라인에, 그들이 원치않을지도 모르는 내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들을 불쑥 들이밀고 싶지 않았다. 반면 싸이월드의 독자들은 기꺼이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페이스북에는 할 수 없었던 - 너무 우울해서, 너무 찌질해보여서, 너무 변태같아서, 너무 솔직해서, 너무 오글거려서, 혹은 너무 쓰잘데기 없어서 - 이야기들을 마음껏 털어놓았다. 

그래서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많이 썼다. 대단히 솔직하고 가끔은 위험한, 혹은 내 질척거리는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올라갔다. 내 다이어리들을 훑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닉네임을 알아야 하는 블로그와 달리 내 이름만 알면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전체공개였기 때문에 일촌이 아니거나 싸이월드 아이디가 없는 사람도 읽을 수 있었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나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 사실 아직까지도 싸이월드 해, 하고 고백하곤 했다. 그건 너를 내 다락방으로 초대해, 나에 대해 읽고 나를 더 알아줘, 나를 더 사랑해줘- 라는 프로포즈를 조심스럽게 돌려 말한 것이었다.  

싸이월드가 야심차게 '모아보기' 기능을 내놓았을 때 나는 속으로 욕을 한바가지 퍼부으며 모아보기를 해제했다. 내 업데이트는 모아보기에는 뜨지 않았으므로, 내 이름을 직접 찾아서 들어와야 했다. 나는 누구나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아무나는 아니길 바랐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처럼 그냥 눈에 띄어서 한번 클릭할 수 있는 글이 아니었으면 했다. 내 일기를 읽기는 번거로왔지만 까다롭지는 않았다. 그 수고로움은 내가 내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이야깃값이었다. 내 친구들은 나에 대한 애정으로 기꺼이 그 값을 지불했다. 

나의 다락방, 나만의 공간. 싸이월드의 대체 불가능성은 여기에 있었다.

'당신이 싸이월드에서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라는 싸이월드의 질문에 사람들은 '추억'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이어리'와 '사진첩'이라고도.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들이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꾸준히 싸이월드로 걸음하는 사람들이 싸이월드에 바라는 것은 명백했다. 발 넓은 네트워킹이나 짧고 빠른 템포의 기록, 실시간 의사소통은 다른 SNS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싸이월드 유저들이 필요로 하는 곳은 차곡차곡 기록들을 쌓아 만드는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비록 'Today History'가 묻어놨던 몇 년 전의 흑.역.사를 끌어올릴 때마다 미니홈피를 폭파하고 싶었지만 (크큭...) 그것들마저도 싸이월드가 담고 있는 나의 일부였다.


드디어 나는 싸이월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개편에 따르는 오류나 접속지연 때문은 아니다. 그런 것 쯤이야 싸이월드에 대한 애정으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싸이월드가 더 이상 다락방이기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이전부터 싸이월드의 개편 방향은 꾸준히 '페이스북 따라잡기'였다. 더 짧고 더 간편해졌다. 버튼 몇 개로 '오늘의 기분'을 올릴 수 있었는가 하면 '모아보기'로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일일히 방문하지 않고도 새 글들을 쓱쓱 훑어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다리 찢어진 뱁새의 기분을 느꼈는지 이번엔 '블로그 따라잡기'로 방향을 틀었나보다. 새 미니홈피 인터페이스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지금은 더 나빠. 십 년째 잘 꾸려오던 다락방의 벽 한쪽이 무너져 휑뎅그레하게 모두에게 드러난 것만 같다.

싸이월드를 버리겠다는 건 단순히 하나의 SNS를 접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공간에서 내가 모아오고 지켜왔던 몇 가지(내게는 현재진행형이므로 '추억'으로 요약할 수 없는)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블로그나 티스토리, 포스타입 등 새로운 공간을 뒤적여보고 있지만 어느 것도 예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만큼 마음에 차지 않는다. 마음이 휑하다. 도대체 어디에다 정을 붙이고 다시 내 다락방을 꾸민담.

오마이뉴스에 기고 청탁받은 글. '기고 청탁'이라고 하니까 대단해보이지만, 실은 늘 기삿거리를 찾는 선배한테 '너 페이스북에 쓴 그거 좀 길게 써봐라' 라는 이야길 들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그래서 티스토리로 왔단 말이지. 아직 어려운게 너무 많다. 일단 이름이랑 블로그 이름 고르는 것 부터가 너무 힘들었고 8ㅆ8... 스킨 적용도 어렵고... 딱 이거다 싶은것도 찾기 어렵고 (아마 만들어어야겠지만) 티스토리식의 글쓰기도 처음이다. 에버노트에서 쓴 다음 붙여넣기 하면 줄간격 조정이 따로 안 되나봐.


또 시작하기 전에 세워야 할 것들. 싸이월드를 할 때 지켰던 내 규칙들, 그러니까 카테고리 이름이라던가 전체공개로 쓴다던가 (누군가를 욕하는 글은 일촌공개였다) 하는 것들이 있었잖아. 여기선 카테고리 이름은 어떻게, 각 폴더엔 무슨 내용을 넣는다던가 (그래봤자 다 일기겠지만, 그래도) 공개설정은? 주소는 누구에게 알려줄건데?

글 양식은 또 어떻고. 어떤 글씨체, 어떤 크기, 어떤 색깔, 어떤 정렬.계속 줄간격 정리가 안 되면 다른 데다가 한 번 옮겼다가 붙여넣는 식으로라도 (혹은 아예 끝까지 다 써서 붙여넣거나) 통일을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어수선하면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나는 이름을 정하고 규칙들을 세우는데 오랜 시간을 들인다.


내용은 형태의 영향을 받는다. 글들은 그것이 쓰여지는 매체의 호흡을 따라간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의 대용으로 티스토리를 선택했지만, 완전히 같은 시스템이 아닌 이상 여기 쓰여지는 글들은 조금 달라지겠지. 게다가 여긴 날짜별로 등록이 안 되는걸! 싸이월드엔 오늘의 일기를 쓰고 후에 어제의 일기를 끼워넣을 수 있지만 여긴 아니게 되었단 말이야.


아, 날짜 베이스에 이름 베이스의 일기 매체로는 싸이월드가 진짜 최고였는데. 싸이월드 운영진은 바보야, 바보...!


블로그와 티스토리 중에서 티스토리를 고른건 조금 더 내 손으로 뜯어고칠 여지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였는데, 으음. 여기는 블로그랑 완전히 시스템이 다르구나. 글을 '발행'하다니 (약간 미핏에서 쓰는 워드프레스 느낌도 나고) 일촌이나 이웃도 없나...? 오 좀 신기해. 적응기간이 필요하겠다!


첫 글을 쓰려고 야심차게 기다렸는데... 하여튼 연습삼아 써보는 첫 글. 음. 여기에 짐을 풀 수 있으려나. 어떤 공간이 될 지 잘 모르겠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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