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8에 붙여 :

  며칠 전 드라마 PD를 포기했던 순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어떤 순간 포기할 수 있었는가? 였던가. 질문이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이런 질문에는 그때그때 다른 답을 내놓곤 한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한 줄로 줄이기엔 너무나도 복합적인 얘기인데, 그 뒤엉킨 것들 중 그때그때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대답이 다르거든. 최근 외부 유입이 많았던 <자격미달이 아닌 삶>이라는 제목 아래 썼던 일기가 바로 그 순간 썼던 일기인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더 썼어야 할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많다. 이왕 내 무엇을 포기하는 순간에 대해 쓰는 글이라면, 좀더 근사하고 완성된 것으로 썼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 때의 내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지.
  아무튼 그 질문에 나는 "나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던 자기소개서가 탈락했을 때" 라고 답했다. 그리고 에버노트를 뒤지다 그 때 썼던 지원서 초안을 발견해서 공유해본다. 왜 '초안' 이냐면, 확인해보니 실제 제출했던 건 다른 포맷의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제출하기엔 아무리 대담하게 정면돌파를 외치는 단원이라도 무서웠나봐. 하지만 지금 두 개를 비교해 보니 차라리 이 쪽을 제출했다면 승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자소서가 탈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 그건 단원이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있는 힘껏 드러내보이고 증명하려고 애쓰는 글이었다. 그들이 요구했던 건 드라마 PD로서의 역량에 대한 글이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드라마PD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거나, 내게 그 역량이 없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내가 드라마PD가 된다면 꽤 근사한 드라마를 잘 만들어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그 때 (라고 써도 고작 2년 전이네!) 의 나는 방송사 입사 준비를 거진 인쟁투쟁의 과정으로 삼고 있었다. 그 때는 그게 절실했지.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긴장을 풀 때(에야) 사랑이 찾아온다" 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훨씬 더 좋은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다. 그렇다고 쓰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이 자기소개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랑고백인걸. 다시 읽으면서 눈물을 찔끔 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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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다음 중 SBS 드라마 PD의 경쟁력으로 적절한 것을 모두 고르시오

[보기]
① 19금 소설 연재 경험
② 영화화 될 웹툰을 예언하는 능력
③ 드라마 저작권 소유자
④ 15년간 2,500장의 일기 쓰기

[정답] 모두 다

[해설]
재미있는 것에 마음이 끌립니다.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궁금해 몸을 던졌습니다. 몇 년 전 책에서 읽은 도시의 이름이 기억에 남아 무작정 100일짜리 여행을 떠났고, 학생회관을 하나의 커다란 부루마블 판으로 만들었으며, 스칼렛 오하라가 되어 지해수와 개츠비를 파티에 초대했습니다.
저를 추동하는 것은 항상 욕망입니다.
① 드라마가 끝나면 이야기도 함께 끝나버리는 것이 아쉬워, 그 주인공들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덕후”들을 자극하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드라마를 가볍게 두루 즐기는 사람들은 드라마의 전체적인 서사를 중시하지만, 매니아, 소위 ‘덕후’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캐릭터에 집중하고 서사보다는 관계성을 분석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드라마가 다 보여주지 않는 것, 덕후들이 드라마의 캐릭터에 바라는 모습들을 진득하게 담아낸 소설을 썼습니다. 4개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2년간 성인 사이트에서 연재한 짧은 단편들은 고정 독자층을 얻기도 했습니다.
② ‘독자들이 보고싶어 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콘텐츠 트렌드를 쉽게 파악합니다. 특히 웹툰 앱은 동시에 여섯 개를 모니터링하는 만큼 유행이 쉽게 바뀌는 웹툰, 웹소설을 빠삭하게 꿰고 있습니다. 단순히 즐기는 것 뿐 아니라, 독자들이 어떤 코드를 좋아하는지, 어떤 주인공들이 각광받는지 분석하고 이들 작품 중 드라마화 될 만한 소재가 무엇인지 정리해두는 저만의 ‘비밀 노트’가 있습니다.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부터 <그녀의 사생활>까지, 이미 드라마화 된 웹툰들은 모두 연재 눈여겨 봐 두었던 작품들입니다. 작년 여름, 프로덕션에서 인턴 생활을 할 때 몇 건의 원작 드라마 기획안을 발제했는데, 그중 <롱리브더킹>과 <대작>은 올해 차례로 영화화 되었습니다.
③ 그러나 다른 작품을 빌려서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약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일상 속의 자그마한, 그러나 사소하지 않은 불편을 고발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드라마 기획안을 쓰고, 제안서를 만들고, 1부 대본까지 작성했습니다. “계약직 오마이가 가짜 회장 행세를 하며 갑들에게 갑질하는 이중 생활 오피스 활극”이 완성됐습니다. ‘조장풍’보다 한 발 앞서 노동 문제를 다뤘고, ‘미쓰리’보다 유쾌하고 발칙합니다. 두 달간 친구들과 매일 밤 늦게까지 치열하게 캐릭터를 움직이고, 질문하고,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사건을 다시 배열하기를 거듭한 끝에 저작권 협의회에 저작권을 등록한 작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프로듀서 스쿨에서, 지상파 국장님과 몇몇 제작사 관계자들 앞에서 피칭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던 것보다 기뻤던 것은, “이런 드라마가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의 가장 낮은 사람들로부터 출발한 마음, 이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했던 그 마음을 잊지 말아라”던 당부였습니다.
④ 15년간 일기를 써 왔습니다. 2,500여 장의 일기가 손으로 쓴 일기장에, 컴퓨터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로 30분간 있던 친구와의 대화에 대해 쓰기 위해 두 시간을 들이기도 합니다.
흔히 드라마를 하려면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또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에 대해 보고 들어도 영원한 타인을 이해하기란 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타인 대신 저를 들여다봅니다. 저를 움직이는 것, 제가 싫어하는 것,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비밀까지. 저를 이해하면 제 안에서 드라마의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겁먹고 솔직해지지 못하는 지해수가 있고, 길을 잃었지만 씩씩하게 일어나는 우서리가 있으며,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연잉군 이금도 있습니다.
드라마는 저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안에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인물들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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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6일 화요일, 여행 26일차, 빈.


(2015. 5. 26. 12:28 / @Kunst Historisches Museum Wien, 1-Saal IV)

1. 오늘의 일정(예정) : 4시 30분 기상, 5시 출발, 6시에 열리는 Nasch Markt의 아침을 보기. 8시 30분에 쇤브룬 궁, 11시쯤 돌아나와서 점심 먹고 12시에 빈 미술사박물관, 4시 반쯤 출발해서 5시에 벨베데르 하궁. 6시 폐관에 출발해서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 도시락 대용 과일과 요거트를 좀 사서 귀가.

2. 오늘의 일정(실제) : 모두 체크아웃 하는 덕분에 6인실은 나만 사용했고, 알람을 아주 크게 맞춰뒀다. 4시 15분, 4시 28분, 4시 45분 알람에 눈을 떴고 다시 자기를 반복. 눈을 떴다가 잤다가, 눈을 떴는데 열 시인 꿈을 꿨다가 시계를 확인하다가를 반복했고 8시쯤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15데니아의 검은스타킹'을 신고, 회색 티셔츠에 하이웨스트 반바지, 위에 HJ언니와 맞춘 체크무늬 치마, 올리브색 가디건. 99퍼센트까지 충전한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챙기며 외출준비를 마쳤고, 로비에 앉아서 잠깐 숙소 문의만 확인한다는게 눌러앉아 신나게 이너넷질, 그리고 열한시 조금 덜 되어서 출발했을거야 아마. Masch Markt엘 들렀고 12시 4분쯤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입성했다.

3. 비가 왔다. 동유럽은 날씨가 안 도와주네. 어차피 미술관에서 일정의 대부분을 보내기 때문에 상관 없지만, 일정의 나머지는 무작정 아무 곳으로나 걷는 것이라서 좀 아쉽긴 하다. 아직까지도 우산을 사지 않았던 건 비싼 가격이 아까워서도, 로컬 흉내를 내느라 무작정 맞고 다니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짐을 늘리기 무서워서. 우산 = 짐 = 무겁다 = 무겁다 = 무겁다 = 인생의 무게... 내 인생은 쓸모없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바리바리 짊어지고 다니느라 정작 필요한 것들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다. 오, 꽤 그럴싸해. 예를 들면 먹다 남은 양배추 반 통이나 술병은 가방에 챙겨오면서 우산은 못 사는 거 말야. 타인을 위한 것들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 오고, 정작 나를 위한 건 사지 못하고 있지만 그건 괜찮아. 타인을 위한 것, 대신에 사람들을 위한 것, 이라고 쓸 거야.

4.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박물관에 눌러앉기라고 합니다. 일기쓰기 뿐만 아니라 감상문, 기행문, 편지도 쓴다. 박물관 소파가 너무 큼직하고 푹신하게 생겨서 앉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오늘은 아이패드를 가지고 왔으므로 시간을 훨씬 훨씬 절약할 수 있을거야!

5. 꽤 오래 지속된 빈의 재래시장인 Nasch Markt. 지하철에 비치된 잡지에서는 물론이고 어제 갔었던 벨베데르의 리얼리즘 전시실에서도 Nasch Markt를 그린 20세기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 그림에선 흰 차양 아래 사람들이 과일같은걸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었고, 뒤로는 멀리 큼직한 돔이 보였다. 어떤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찾아보려고 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고. 
  시장은 - 매번 Nasch Markt라고 쓰기 불편하니까 - 생각만큼 크지는 않았다. 좁은 길 양쪽으로는 차양이 쳐진 가게들이 빼곡했고, 비를 피해 차양에서 차양으로 조심스레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여느 관광지만큼 붐비지는 않았지만, 워낙 길이 좁아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음, 방산시장과 경동시장을 합쳐놓은 거라고 생각하면 딱 맞다. 경동약령시의 인도 바로 곁의 좁은 골목들 있잖아. 꽃이나 과일을 파는 가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1) 말린과일/견과류/주전부리 2) 치즈와 햄 3) 피클 류의 반찬과 후무스 4) 초콜릿/누가 정도였다. 중간중간 카페와 식당도 있었고 터키식 바끌라바나 빵, 차, 옷가지를 파는 곳도 있었고. 
  1)과 3)이 제일 흥미로왔다. 1)은 베이킹 재료와 그냥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 양 쪽에 걸친 것들이었는데 - 정말 방산시장이라니까! - 호두, 피칸, 아몬드나 말린 바나나는 물론이고 말린 망고와 키위, 파인애플, 살구나 사과로 추정되는 것에 더해 심지어는 watermelon! 수박까지도!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대개 건망고처럼 설탕을 발라 말랑하게 말려서 엄청 달았다. 100그램 단위로 팔았는데, 몇 가지 종류를 섞어서 조그만 봉투에 담아 팔기도 했다. 술안주처럼 볶거나 한 것도 있었고, 초록색의 조그만 걸 먹어봤는데 와사비 맛이 톡 쏘아서 슬퍼졌다. 3)은, 어, 잘 모르겠지만 약간 터키 느낌이었는데, 피클처럼 절여진(pickled라고 표현하는) 올리브나 파프리카, 또 올리브, 올리브, 그리고 올리브나 오이나 방울파프리카 안에 부드러운 하얀 치즈를 넣은 반찬류의 음식들이 많았다(여기서 요리를 할 수 있었다면 사다가 먹어봤을텐데! 파프리카는 별로였지만). 또 온갖 맛의 (망고 맛도 있었다) 후무스들. 음, 나초 사다가 술안주로 먹으면 딱인데.
  경동시장과 다른 점이라면, 가게 사람들이 익숙하게 관광객들을 호객하던 것(경동시장이라면 영어도 안 통했을텐데). 좁은 골목의 양쪽에서 Hello? Hello?는 물론이고 니하오, 그리고 사랑해요!를 들을 수 있었다. 안녕도 아니고 사랑해요라니! 심지어는 꽤 많았다고. 사랑해요, (너 나) 사랑해요? 하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말린 바나나를 건네주던 어떤 청년이 있었다. 처음에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가 내가 당케 쉔! 하니까 오, 당케? 하고 놀라더니 다음부터는 독일어로 대화를 걸던 아저씨도 있었고. 결국 못 알아듣자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는데, 아무리 쥐뜨 꼬레! 하고 말해도 못 알아들어서 다시 영어로 설명해야 했다. 두 번째로 만났을 땐 내 이름을 물어보더니 다이앤 아이 러브 유! 하고 아주 열정적으롴ㅋㅋㅋㅋ외쳤다곸ㅋㅋㅋㅋ한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여기 터키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하고 생각했는데 지나가는 내 뒤로 메 아모르, 던가 하여튼 이탈리아어로 mon amour 를 외친 걸 보니 이탈리아였을 수도 있겠다.
  여러군데에 시식용 접시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씩 시식해보라고 건네주거나 유리창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하나 맛보겠냐고 이것저것 꺼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미있는 곳이었지만 떠나는 게 아쉽지 않았다. 

6.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말린 히비스커스. 물이 담긴 와인잔에 넣어두었더니 빨간 색깔이 고이면서 뾰족하게 피었다. 100그램에 3유로 정도였다. 조금 사가고 싶었는데, 무겁진 않더라도 부피가 좀 돼서 망설였다. 좋아하는 친구들을 초대해놓고 따뜻한 차로 한 잔씩 우려주고 싶었어. 너의 앞에서 빨갛게 꽃을 피우고 싶었어. 파리의 시장에서도 분명히 비슷한 걸 찾을 수 있겠지? 싶어서 간신히 참았다. 사실 한국에서도 구하려고 하면 구할 수야 있을테니까.

7. 아주 커다란 치아바타가 1유로! 사고 나서도 너무 커서 당황했는데, 음, 딱 1유로같은 맛이었다. 내가 아는 치아바타는 이런게 아닌데... 디어브레드의 치아바타가 먹고싶어졌어. 뭔가 넣어 먹을걸 살 수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시장이 끝나버려서 그냥 나왔는데, 뒤늦게 견과류든 뭐든 간식거리가 될만한 걸 좀 살걸 하고 후회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없는 퍽퍽한 빵을 뜯어먹고 있자니, 반찬 없는 맨밥만 꾸역꾸역 밀어넣는 것 같은 서러움이 몰려왔다. 빨리 요리 할 수 있는 호스텔로 가고싶어...

8. 그리고 지금 이 곳, 미술사 박물관. 서로 마주보고 선 쌍둥이 궁의 한 쪽은 자연사, 반대쪽은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했다. 11유로짜리 티켓을 끊었고, 홀에 들어선 순간 감탄이 흘러나왔다. 궁궐 건축은 관심이 없다고 어제 생각했는데 취소하겠어. 아주 커다랗고 웅장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아름다웠다. 돔 형 천장의 구멍 너머로 더 위쪽의 천장 장식이 보였고, 중앙에 뻗은 커다란 계단은 붉은색 얼룩무늬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화려했지만 천박하지 않고 우아했고(금칠 장식은 마찬가지였지만, 벨베데르는 조금 천박하게 느껴졌는데 왜 이 곳은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9. 어렸을 땐 궁전에 살고싶었다. 공주님이 되고싶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싶었거든. 열일곱 살 때 봤던 베르사유는 그 꿈을 가차없이 깨뜨려 주었지만 -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이 그런 곳일 줄은 몰랐는데! - 대신 그때부터 나는 박물관에서 사는 꿈을 꾸었다. 실제로 몇 년 후 루브르 박물관이 행사나 식사를 위해 박물관을 대관해준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물론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루브르 박물관의 니케의 조각 앞에서 내 생일파티 만찬을 여는게 꿈이었는데말야. 아마 세계에서 열 손가락쯤 드는 재벌과 결혼하게 되면 거기서 결혼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0. 그리고 이곳이라면 살고싶을 것 같아... 마룻바닥이 조금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11. 중앙 계단을 올라오면 켄타우로스를 잡아죽이는 테세우스의 조각상과 마주치게 된다. 아주 섬세하고 예쁜 조각상은 아니었지만, 아주- 커다랗고- 또다시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켄타우로스의 손가락과 손톱 사이의 여린 큐티클이 보였다. 조각품들을 실제로 보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미술책이 보여주지 않는 각도를 볼 수 있다는 것 같아. 테세우스의 다리 사이에 난 곱슬거리는 털들은 작은 나뭇잎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그 나뭇잎 뒤를 슬쩍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춰지는 부분은 뭉뚱그려 생략할까, 아니면 그런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만전을 기해 조각할까? 가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진짜로!) 어쩐지 변태가 된 기분이어서 그만 뒀다고 한다. 

12. 이 곳의 소파는 아주 친절하다. 방 중앙에서 네 방향을 향해 둘러 놓인 푹신한 소파엔 팔걸이도 있고 등받이도 있어서 등을 쭉 기대고 그림들이랑 천장 조각장식을 구경하기에 완전 좋아. 

13. 때때로 어떤 전시실들은 한 번에 하나의 그림만을 걸어두는 대신 온 벽의 위아래를 여러 개의 그림들로 가득히 채워놓는다. 마치 엽서나 사진을 가득 붙여 벽을 장식하듯이 그림을 가득 걸어놓은 곳들. 대체 그림을 보라는거야 말라는거야?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곳에 들어서면 일종의 경건함이 느껴진다. '예술 작품으로 사방이 가득찬 공간'에 서 있는 것은 단지 한 작품과 마주한 것과는 다른 기분이 들어. 그럴 때는 그 작품이 가진 아우라를 느낀다면 이럴 때는- 어- 예술 그 자체가 가진 아우라에 그득 둘러싸인 기분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눈에 쉽게 들어오지는 않지만, 벽에 가득한 그림들로부터 뿜어나오는 존재감들과 - 이 액자들에 사진이 가득했다면 또 다른 기분일테니까 - 우리가 그 아름다움들을 어떤 방식으로 경외하는지, 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네. 하여튼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아주 아름다운 공간이라 그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된다. 목을 꺾듯이 저 높은 곳까지 가득 걸려있는 그림들을 올려다보다가 어쩐지 눈이 시큰해졌다.

14. 그게 눈이 건조하고 시려서이기 때문은 아니었겠지!

15.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이곳에 온 건 벨라스케스 때문이었다(벨라스케스의 한 작품은 지금 뉴욕에 있다는 것 같지만). 나는 가볍게 라파엘로와 카라바조를 건너뛰었고, 때때로 미술교과서에서 보았던 수많은 신화화나 종교화들을 스쳐지나가며 벨라스케스의 왕녀를 찾아다녔다.

16. 오늘의 박물관, 하나. 그러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캔버스가 걸린 이젤과 작업용 가방이 놓인 스툴을 끌고가는 것을 보았다. 설마 새 그림을 지금 걸어놓으려고! 그런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그래서 따라가지 않는 척 빠른 발걸음으로 할아버지를 쫓아갔다(중간에 경비원과 눈이 마주치면 그림을 둘러보는 척 하면서). 삐걱대는 발걸음이 민망했다. 할아버지는 복잡하게 연결된 전시실 이곳저곳을 능숙한 발걸음으로 누볐다. 그리고 도착한 곳엔 주세페 아킴볼드가 있었어ㅡ 트롬프 뢰유로 유명한 그 화가가! 좁은 전시실엔 아무리 미술시간에 졸았더라도 한 번은 봤을법한 겨울, 바다, 여름이 걸려있었고 (이 작품들이 여기에 걸려있다면 저 큰 곳에 있는 것들은 얼마나 대단한 그림들이라는걸까? 난 잘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멈춰섰고 겉옷을 벗어놓으며 작업할 준비를 했다. 비어있는 한 면에 그림을 걸려는걸까? 하지만 거긴 닫힌 문인데. 
  그리고 할아버지가 연 공구통 안에 있던 것은 연장이 아니라 붓들과 물감이었다. 할아버지는 '바다'의 바로 곁에 이젤을 세웠고, 물감을 짰고, 그림을 가만히 뜯어보다가 색깔을 하나 골라 몇 번의 붓질을 하고 다시 그림을 뜯어보기를 반복했다. 거의 완성된 걸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바다 모작은 제법 그럴싸하게, 아니 몹시도 원본과 흡사했다고.
  좋아보였다고 한다. 박물관은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갖가지 사람들이 갖가지 마음을 가지고 박물관을 방문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곳을 즐긴다. 내가 미술 전공이었다면 (대영박물관에서 본 어떤 사람들처럼) 크로키북을 들고와서 조각상들을 스케치했을거야. 이곳엔 아름다움들이 가득하고, 누구나 그 일부를 조금씩 훔쳐가려고 노력한다. 나같은 경우엔 그림을 앞에 놓고 일기를 쓰는 방식이고(가끔은 사진도), 모작을 하는건 그 분의 방식이겠지. 

17. 오늘의 박물관, 둘. 유럽의 어느 박물관이든 관람객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중장년층의 서양 사람들이다. 마우리츠하위츠의 줄에서 확 느꼈어. 뒷짐을 지거나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그림 앞을 서성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오늘, 이곳에서 뭐든지 다 하지 않으면 안 될것 같이 조급했던 내가 바보같아진다. 전공도 아닌 스물 네 살 짜리가 미술사를 줄줄 꿰지 못하는게 아쉬울 건 뭐야, 나중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공부한 뒤에 또 보러 오면 되지. 오늘 이 미술관의 작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보고 가지 않아도 괜찮아, 몇 개 놓쳤다면 나중에 다시 와서 보면 되지. 그 때는 지금같은 감성은 좀 닳고 바랬을 지는 몰라도, 그만큼 더 많이 알고 깊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또 있을테니까.
  그래서 어떤 노부부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조급하게 다음 전시실로 가고싶었고 할머니는 가다 말고 되돌아왔다. Come, come here! / Come here! 두 사람은 서로를 불렀다. Come here, I wanna show you something. / Come, I want to show you three Velasquez. 벨라스케스란 말에 솔깃해서 돌아보았다. 기어이 할머니는 당신이 서 있는 그림 앞으로 할아버지를 불렀고, 두 분은 나란히 서서 나는 모르는 어떤 화가의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참 아름답지 않아요? 특히 여기가... 난 이 그림에 감명받았어요. 이 부분이 기억나요. 하고 잠깐 정다운 대화를 나눈 뒤 할아버지는 옆 전시실로 할머니를 이끌어갔고, 거기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벨라스케스가, 왕녀의 초상화가 세 점 있었다고 한다. 아.. 좋았어.

18. 박물관 곳곳엔 모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 비슷한 이젤과 공구통을 쓰는걸 보면, 박물관에서 허가한걸까

19. 반 다이크의 삼손과 데릴라 앞에서 고개를 뒤로 꺾고 신나게 잤다. 입도 벌리고 잤어... 음... 자고 일어나니까 배고파졌다. 정말로 취미를 박물관에서 낮잠자기로 해야할까봐. 다이크의 삼손은 인삐가 났다. 주먹이 좀 더 크게 그려졌어야 했다고 생각해.

20. 예술의 해석은 수용자에게 달렸다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감흥이 없어도- 되는걸까? 내 취향이 아닌 그림이라서, 내가 보고싶던게 아니라서, 내가 잘 몰라서, 혹은 내가 지금 지쳐서? 폐관까지 앉아있자고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일어나서 나가도 상관 없을 기분이다.

21. 취향의 발견. 나는, 음, 루벤스나 카라바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건 확실하다. 중세 미술, 취향 아님. 로코코, 어느정도만. 20세기엔 호불호가 많이 갈려. 에곤 쉴레는 대단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아'. 클림트는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 지도 몰라. 이렇게 제하고 났더니 내가 좋아하는건 뭘까, 알 수 없어졌다. 어느정도는 네덜란드 화가들 (혹은 Flemish painters라고 불리는- 플랑드르?) 을 좋아해. 인상주의는 별로야. Expressionism? 표현주의? 도 아닌 것 같고. 그럼 내가 좋아하는건 뭘까. 왜 나는 꾸역꾸역 미술관을 찾아다니지?  (물론 미술관에선 미술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지만) The fall of man. 인간의 타락. 이브는 사과보다는 복숭아처럼 보이는 과일에 손을 뻗었다. 아... 복숭아 먹고싶다. 자두 먹고싶어... 오늘은 꼭 들어가면서 장 봐 가야지. 본의아닌 다이어트식단이 되었지만, 요거트랑 과일 먹고싶다...

22. 뭐든지 주의깊게 오래 들여다보아야 아름다운 법이지만, 그렇다면 내가 아우라라고 생각했던 그것들은 그저 착각이었을까?

23. 류 선배에게 엽서 한 장. 오스트리아에 가보고싶다고 했어서. 만년필이 엽서 표면을 미끄러져서 곤란했다.

24. 벨베데레 궁의 팸플릿엔 유디트가 실려 있다. 왜지? 유디트가 벨베데레의 소장품이었나... 난 본 적이 없는데. 클림트의 그림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유디트다. 몇개월 전 뉴욕에 서 전시회가 있었댔나, 그래서 거기 가있었는지도 모르겠네. 하긴 한국에도 유디트는 들어왔었지, 키스는 없었고. 다시 보고 싶었는데.

25. 어쩌면 다시 보지 않아서 다행인지도 몰라. 나는 유디트를 아주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기분으로 다시 본다면 그만큼 아름답지 않을것같았거든. 그 날 봤던 이브가 나에겐 굉장한 충격이었는데 이번엔 아니었던 걸 봐.

26. 완전히 지쳐서 그만 나갈까, 하다가 박물관 샵에서 이오의 그림을 발견했다. 먹구름으로 변신한 제우스에게 감싸인 이오. 어- 이 그림이 여기 있다고? 난 본 적이 없는데? 같은 화가가 그린 다른 그림은 보았다. 독수리로 변신해 가니메데를 납치하는 제우스. 좋아하는 그림이라 보고싶어서 다시 갤러리들을 뒤졌다. 결국 찾지 못하고 물어봤는데, 지금 미국에 전시되어 있다고. 가니메데의 그림 반대쪽에 걸려있었다고 했다(왠지 그럴 것 같더라니). 

27.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덜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 걸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

28. 100일, 예산 천만원의 여행.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보내는 하루엔 평균 십만원이 들어간다. 오늘은 십만원만치의 하루였을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내가 십만원어치의 뭔가를 느꼈을까? 오늘을 재료로 십만원어치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런건 몇천킬로그램만큼의 풀을 먹어치우고 고작 그 삼십분의 일만큼의 고기를 남겨주는 소와 비슷한 거 아닐까. 비효율.

29. 두리번거리면서 깨달은건데, 이 곳에 있는 그림들은 아주 아름답다. 내가 그걸 느끼든 못 느끼든 상관 없이말야. 이 아름다운 것들을 죄다 뒤로 하고, 안녕, 다음에 다시 올게요.



독일 발음은 '빈'인 것 같은데 나는 비엔나라는 이름이 더 예쁘다고 생각해. 저 엽서는 부치지 못하고 잊어먹었다. 류에게 주기 위해 샀던 엽서도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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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4: 2015. 5. 24 /Wien

어제 2016. 10. 12. 15:12
2015년 5월 24일 일요일, 여행 24일차, 빈.

0. 벌써 24일이라니. 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2015. 5. 34. 8:46 / @Aida)

1. 밤 열한 시 오십오 분, 프라하 플로렌스에서 출발한 버스는 새벽 네 시 사십분인가 즈음에 비엔나에 나를 내려놓았다.

2. 두 시 까진가, 버스의 와이파이를 즐기며 검색도 하고 오빠랑 통화도 하고(잘 안 됐지만) 하다 눈을 붙였다. 입을 벌리고 자는데 스튜어드가 나를 깨웠고 비엔나 공항이 아니라 시내로 가는거라면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했다. 탑승할 때 티켓을 꼼꼼하게 체크하는건 이래서였구나.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렸고 내 캐리어는 이미 인도에 덩그러니 놓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3. 그래도 다섯시는 넘어서 도착할 줄 알았는데... 버스 터미널도 아닌 거기는 컴컴하고 휑뎅그레하고 추웠다. 버스 저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는데, 같은 버스를 탔던 (한국어를 들었다) 여자 두 사람이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던 거였다. 두 사람은 프라하에서 자그레브로 가는 길이었고, 곧장 비엔나에서 유로라인 버스를 탄다고 했다. 유로라인 버스 탑승은 다른 곳이었기 때문에 셋이 나란히 역을 찾았다. 구글맵은 다섯 시나 여섯 시에야 있는 S반의 첫 차를 타고 또 25분이나 걸어야 하는 한 시간짜리 경로를 알려줬는데, 그냥 무작정 U반을 타기로 했다. 지하철은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대충 어떻게든 되겠지. 72시간 교통권을 샀고 새벽 네 시 오십 분에 펀칭을 했다. 

4. 놀랍게도 U반은 운행중이었다(!) 시간표를 살펴보니 첫 차가 일찍 시작된게 아니라 막차가 안 끝난 것 같았다. 나이트라인 일수도 있고, 24시간 운행일수도 있고. 어쨌거나 다행이었고, 숙소까지 가는 내내 우리처럼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가는 여행자들과 아직도 술 마시던 파티나잇 무드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남자들을 여럿 마주쳤다(우릴 보고 슐디궁, 하고 우리가 별다른 대답을 않자 쏘리, 쏘리, 쏘리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서는 곤니치와, 곤니치와, 곤니치와, 라고).

5. 분명히 숙소 주소를 오프라인으로 저장해뒀던 것 같은데. 구글맵은 검색이 안 됐고, 심지어는 내 위치를 프라하 한 가운데로 찍어주었다. 얘 넌 아직도 프라하에 있으면 어떡하니?...

6. 캡처해 둔 지도를 보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U반 역을 찾았다. 로이먼플라츠. 잘 모르겠지만 노선이 빨간색이니까 U1이겠지. 일단 가장 가까운 역인 스타디온에서 U2를 타고, 무조건 U1 환승역에서 내려서 갈아탈 계획이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노선도를 찾아봤는데 심지어는 유효했다고 한다. 하하! 지하철 만세! 로이먼플라츠는 1호선 맨 끝 종점역이었다. 

7. 스물 한 살쯤 되어보인다고 내심 생각했던 두 여자는 서른살이었다. 중학교때부터 친구였대. 회사를 끄만 두고 50일짜리 여행을 하는 중이랬다.

8. 비엔나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독일의 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길 들었었다. 오스트리아는 무슨 언어를 쓰지? 오스트리아 어? ......독일어? 독일어를 쓴다는 생각에 반가워졌다. 슐디궁, 하고 말을 붙인 뒤 데...데꾸이? 하는 대신 당케 쉔! 할 수 있다는 점에 편안함을 느꼈다.

9. 세상에, 독일어가 반갑고 편안해지다니!

10. 가방을 질질 끌고 환승역에 도착했다. 바닥엔 나뒹구는 쓰레기와 담배꽁초와 함께 누군가 물컹 미끄러지게 밟고 바닥에 신발을 질질 끌어 닦은 흔적이 남은 질펀한 덩어리(...)가 있었다. 진흙이라고 보기엔 좀... 어... 대체 왜 지하철 돌바닥 한 가운데에 저런게...? 

11. 환승역의 양갈래 길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지 몰라 지도와 역 이름을 맞춰보며 쩔쩔 매다가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게 문을 열고 물건을 들여놓던 아저씨는 '슐디궁, 우 아인츠, 로이만플라츠' 라는 몇 개의 단어조합만으로도 훌륭하게 나의 곤란을 알아봐주었고, 그냥 방향만 알려주면 될텐데도! 가게 문을 닫아걸고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양갈래 중 오른쪽 길로 쭉쭉 걸어들어가 코너를 돌자 '로이만플라츠(행)' 하고 씌여진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거기까지 다다라서야 이걸 타고 내려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돌아갔다. 몇번이나 당케, 당케 하고 외쳤다.

12. 로이만플라츠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하늘이 파르스름하게 밝아온 후였다. 역은 작은 공원같은 나무덤불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다. 풀꽃냄새가 났고, 새들이 극성맞게 날아다니며 쪼로로롱 지저귀었다. 자기들이 신데렐라 캐스트라도 되는 줄 아는가봐.

13. 안 되는 구글맵을 붙들고 주변 거리 이름을 맞춰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길 건너편에 선 두 남자가 이쪽을 보고 뭐라뭐라고 외쳤다. 여행중엔 조금 날이 서 있는 편이라 일단 경계부터 하고 봤는데, 헬로? 헬로? 하는게 날 보고 말을 거는 것 같아서 길이나 물어보자 하고 가방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가까이 가자 그가 아까부터 반복했던 말이 명확하게 들렸다. "호스텔? 호스텔?" 지도를 보여주기도 전에! "이쪽으로 300미터!" "어떻게 알았어요? "We know, we know." 어쩌면 I know, I know 였는지도 몰라. 그들은 길가에 택시를 세워두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였다. 목소리 높여 당케, 당케! 하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아, 상냥해. 

14. 결과적으로는 틀린 길이었다. 그 길로 쭉 가는게 아니라 첫번째 블록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쭉 갔어야했어... 돌덩이같은 가방을 질질 끌며 걷다가 거리 이름과 지도를 맞춰봤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세로로 놓여있어야 할 길이 가로로 놓여있었어. 한두어 블록을 더 가고 나서야 내가 엉뚱한 방향 - 반대도 아니고 - 으로 가고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가고, 아마도 맞는 방향일 것으로 추측되는 쪽으로 길을 꺾어서 한참 걸었다. 길은 지저분했다. 게다가 언덕길이었다. 빗물 웅덩이와 함께 담배꽁초, 쓰레기, 그리고 똥(이번엔 명확하게도 사람의 것이 아니어보였으므로 안심했다)들을 피해 캐리어를 끌면서 또다시 인생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히 10킬로그램을 부쳤는데도 왜 이렇게 무겁지. 늘어난 건 하나도 없는데. 새벽 공기는 차갑게 가디건 안쪽을 파고들었다. 길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택시만 몇 대 쌩쌩 달려갔다. 그래도 호스텔이 안 나와서 두리번두리번 헤매고 있는데, 지나가던 택시 한 대가 멈춰섰다. 보조석 창문이 열렸고 (왜 영업중인 택시 보조석에 앉은 사람이 손님이 아니라 친구사이로 보이는거지) 남자가 날 보고 뭐라뭐라고 했다. 어드레스? 어드레스? 어딜 가냐는 것 같아서 냉큼 아이패드를 보여줬고, 남자는 말로 설명하려다 영어가 짧자 택시에서 내려서 저 앞에서 꺾으라며 길을 알려줬다. 또다시 당케 쉔, 당케 쉔!

15. 아, 정말로 세상은 친절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은 다 친절한 걸지도 몰라.

16. 힘들게 호스텔에 도착했다. 아마도- 여섯시나 그 쯤 되었을거야. 24시간 리셉션엔 수염을 기른 남자가 있었다. 체크인은 오후 두 시 이후이므로 일단 캐리어를 맡겼다. "어, 괜찮으면-" "소파에 앉아서 와이파이 좀 써도 되냐고요? 물론이죠." "아뇨, 숙박비 계산 지금 미리 할 수 있냐고요." 친절한 사람이었다. 나한테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를 줬고, 가방을 보관해두고 돌아와서 다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줬으며, 지도를 줘놓곤 또다시 설명해준다고 새 지도를 꺼내줬다. 이따 체크인이 편하라고 작성해야 할 종이를 미리 작성했고, 6인실 도미토리 중 여성전용이 있는데 그쪽으로 배정해줄까 하고 물어봐주기까지 했다. 아주 짧은 망설임(내가 너무 사람을 가리는 건 아닐까, 이게 일종의 차별(혹은 남성혐오)은 아닐까, 어떤 가능성을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끝에 여성전용 도미토리로 방을 바꿨다. 또다시 저녁에 커튼을 걷었는데 허리에 수건만 두른 남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속옷 빨래를 편하게 말려두고 싶어...... 너 일본에서- 어, 캐나다? (주소를 적을 땐 주로 밴쿠버 주소를 적는다. 왜냐면 그게 간단하니까) 진짜로는 어디서 태어났어? 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했고, 가볍고 유쾌한 수다를 - 캐나다는 정말 추워? 우리 가족은 진짜 곰이 시내 한복판을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있대 - 떨었다. 비엔나에 왔는데 뭘 볼지 모르겠다면? 하면서 지도를 꺼내 박물관들은 여기에 밀집해 있고, 여기엔 재래시장이 있고 - 이름을 적어줄게 - 쇼핑하고 싶다면 여기, 또 쇤부른 동물원을 추천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동물원이거든! 하고 여기저기 동그라미를 쳐 줬다. 자그레브로 가는 교통편에 대해 이야기하자 컴퓨터에 앉아서 금세 검색을 해줬는데, 보통은 프라하나 부다페스트로 간다는 말에 '나 프라하에서 왔는데!' 했고, 어땠어? 음... 난... 별로였어. 뭐? 프라하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그거 참 놀라운데? 그리고 몇 명의 동료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대화는 끝났다. 프라하가 좋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7. 소파에 앉아서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오빠와 통화를 했다. 아침은 재래시장에서 먹을까, 했지만 일요일이라서 오늘은 열질 않는대. 오늘의 계획 : 1) 아침을 먹는다 2) 레오폴드 미술관을 간다 3) 장을 본다 4) 숙소에서 밀린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하고 잔다. 그러나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잠을 못 잤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파에 앉아있으니까 아찔아찔 몽롱해졌다. 오빠가 토닥토닥 해주고 싶다는 말에 토닥토닥 말고 재워줘... 했다. 오빠는 지금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면서 팔에 핸드폰을 얹어놨으니까, 나를 팔베개 해주는거랬다. 귀여워! 적어놨다가 내 소설이나 드라마에 써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린게 참 많다). ...그리고 생각했는데 이거 예전에 내가 했던거 아냐?

18. 한시간 반의 통화 끝에 여덟 시 쯤 숙소를 나왔다. 공기가 여전히 쌀쌀해서 어깨를 옹송그렸다. 그래도 길가에 하나 둘씩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숙소에서 역까지는 꽤 멀었고, 나는 춥고 배고팠고 피곤했고, 몽롱한 눈으로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아무데서나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따뜻하게 앉아있을 순 있겠지. 그리고 왜 안되지? 라고 생각했다가 포기했다. 춥고 배고팠고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밥... 밥을 먹을거야.... 커피를 마셔야겠어...... 적어도 번화가쪽으로 나가면 아침 메뉴를 하는 식당을 만날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 고작 세 정거장을 가면서 지하철에 앉아서 잠깐 정신을 놓고 휘청 졸았다.

19. 목적지인 뮤지엄쿼터(박물관 밀집지역)역을 가려면 칼스플랏츠 역에서 갈아타서 한 정거장. 갈아타기 귀찮았으므로 그냥 칼스플랏츠에서 내렸다. 조금 번화가니까 뭐라고 있겠지, 했는데 웬걸, 하나도 없었다. 넓은 도로엔 차들조차도 드물게 다녔고 간간히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20. 런던에서 여행을 시작하면서 나쁜 버릇: 유럽에서 나는 아주 당당하게 무단횡단을 하고 다니는데, 그게 '무단'횡단이라는 생각조차 안 들어...

21. 간신히 아침 영업을 하는 카페를 찾았다. 온통 핑크색이었다. 그러나 내가 먹고싶은 건 카페가 아니라 레스토랑 메뉴였다. 계란! 계란이 먹고싶다! 오믈렛이나 스크램블드 에그가 있는 전형적인 북미식 아침식사! 그래서 그 동네를 한바퀴 뒤지고 다녔지만 열고있는 카페는 너무 비쌌거나(카페 뮤지엄), 영업시간이 열 시 부터거나(카페 비스트로), 스타벅스 뿐이었다. 결국 포기하고 처음 찾았던 핑크핑크한 카페로 돌아왔다.

22. 걷고있을 땐 괜찮았지만 앉으면 바로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직도 커피는 잘 안 마신다. 난 카페인을 마시면 배탈이 나거나 심장이 쾅쾅 날뛰는 사회부적응자가 돼... 그래도 이럴 땐 커피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오스트리아식 에스프레소인 '아인스파네' 뭐시긴가 하는거,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그걸 먹어보려고 했다가 '비에네 에이스카페' 를 시켰다. 에스프레소 - ??? - 바닐라 아이스크림 - 휘핑크림. 아인스파네와 비슷하지만 아이스크림과 아마도 우유가 들어가니까 덜 쓸 것 같았고, 게다가 비엔나 스타일이잖아. 근데 비에네 아인스파네Einspänner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에이스카페Eiskaffee였네? 그럼 아이스커피인걸까. 휘핑크림(느끼하고 맛잇었다)이 반절 넘게 올라간 커피가 나왔다. 커피를 마시고 크림을 떠먹어야 할지 섞어먹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잔을 한껏 기울였는데도 크림만 베어물었다. 크림층이 너무 두꺼워서 에스프레소가 흐르지 않았다. 이리저리 잔을 기울이고 혼자 잔망을 떨어보다가,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귀여워해주었겠지만 볼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만뒀다. 스푼으로 한쪽을 파내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 생각만큼 쓰지 않았다(아마 뭔가 섞였나봐). 홀짝홀짝 마시다가 생크림이랑 완전 뒤섞어버리고 나서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다. 떠먹고 싶었는데 완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23. 샌드위치같은걸 먹고싶었는데 온통 케이크나 타르트 아니면 크로아상과 패스트리 뿐이었다. 노란 계란 노른자 두 알이 올라간 패스트리를 골랐다. 커피와 함께 5.몇유로, 계란이 두 개나 올라간 패스트리 하나에 2유로라니 각오한 만큼 비싸진 않았어! 계란이 탱글탱글하지 않고 약간 졸아붙은? 굳은? 모양새라 어떻게 요리했는지 궁금했어. 한 입 먹었는데 달콤해서 당황했다. 그리고 노른자를 베어물었는데... 달았어... 노른자가 아니라 살구를 졸인 거였다. 

24. 배신당했어. 난 동물성이 먹고싶었단 말이야.

25. (10:03) 한시간 반 정도 죽치고 앉아 일기를 쓴다. 거리는 조금 더 밝아졌고 활기를 띤다. 차들이 많아졌고 사람들이 늘어났어. 카페에도 손님들이 늘어났다. 처음에 내 양 옆에는 할아버지 두 분이 커피를 놓고 앉아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오른쪽 할아버지는 카페 사장님(?)인지, 손님들이 남긴 빈 그릇을 치워주더니 퇴근하셨다고. 의도하지 않게 카페를 관찰(?) 하게 됐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그룹들도 두엇 와서 빠르게 아침을 먹고 가곤 했다. 혼자 온 할아버지들이 많았는데, 대개는 에스프레소 잔으로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다. 북미식 아침이 계란과 토스트라면 유럽식 아침은 커피와 크루아상인가봐(녜니의 친구에 따르면, '아침엔 카푸치노!'). 정말 커피만 마시러 왔는지, 카운터에 서서 잔을 쭉쭉 비우곤 나간 남자도 있었다. 

26. 누군가들의 아침을 관찰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일 줄은 몰랐어(저녁을 관찰하는 것보다도 더!). 무작정 밖에 나가 아무데나 앉아있어보라는 오빠의 말이 유효했다. 실은 내가 잘 할 법한 일인데도 부지런하지 못해서 하지 못하는 일. 

27. 비엔나에서 보고 싶은 건 딱 세가지, 레오폴드 미술관, 벨베데레, 미술사 박물관. 레오폴드엔 약간의 클림트와 에곤 쉴레가, 미술사 박물관엔 벨라스케스의 왕녀가, 벨베데레엔 클림트의 키스와 유디트가 있다. 역순으로 기대하고 있다. 벨베데레는 첫 날 가는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무거운 가방도 풀어놓고 예쁜 옷을 입고 깨끗하게 씻은 상쾌한 모습으로 보러 가고 싶어서 하루 아껴두었다.

28. 머리가 조금 굵어진 뒤 본 첫 전시회는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클림트전이었다. 그게 열-일곱살때였을까? 여섯살? 처음으로 내 스스로 보고싶다고 생각해서 보러 갔던 전시회였고, 그걸 기점으로 전시회를 보는 재미를 알았다. 류와 함께였다.  
  황금빛이 흘러넘치는 클림트를 기대했지만, 전시회엔 클림트의 후기 작품들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스크린으로 대체했다. 그래도 두 점의 유디트는 좋았어. 나는 미술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었고 미술책에 실린 명화들엔 감흥이 없었으므로, 흔히 명작이라고 불리는 그림을 내 맨 눈으로 마주하면 이렇게 강렬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경험이었다. 그것을 '아우라'라고 부른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미술 작품들의 어떤 물질성- 지금은 마땅히 마음에 드는 표현이 없어서 투박하게 쓰여지는데, 하여튼 미술 작품들을 대면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강렬한 존재가 거기에 있음을 어렴풋히나마 알게 됐다.

29. 그리고 클림트의 키스가 보고싶었다. 그의 황금빛 그림들이 궁금했다. 오스트리아의 박물관으로 간다면 그것들을 볼 수 있을까, 언젠가는 직접 그 작품들을 '보고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무엇을 '보고싶어'졌던 일이었다.

(2015. 5. 24. 12:01 / @Leofold Museum)

30. 외국 박물관들의 좋은 점 몇가지. a) 작품과의 거리가 가깝다. 대체로 저지선을 놓지 않아서 코앞에서 작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b) 곳곳에 의자가 있다. 필요하면 스툴을 가져다 쓸 수도 있다. 작품 앞에 앉아 쉬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니! c) 예외가 있지만 대개는 플래시 없이 촬영이 가능하다.

31. 열한시 쯤 들어왔던것같은데, DVD 상영하는 곳에서 벽에 기대 신나게 졸다 깨다 졸다 깨다 (두 번을 보고야 말았다) 나왔더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핸드백이 돌덩이같이 무겁다. 다이어리, 아이패드, 물병, 필통, 수첩 두 권, 빵빵한 파우치에 헤드폰이랑 충전기랑 기타등등밖에 안 들었는데.

32. 윰은 클림트를 보러 왔다가 '에곤 쉴레에게 뺨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33. 더 많이 알게되는 만큼 보인다. 단순히 배경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들이 어떤 풍경, 어떤 동작과 표정, 어떤 감정을 그리고자 했는지, 이제는 알겠어. 어쩌면 이건 내가 아는 만큼만 아는대로 받아들이려는 것일 수도 있다. 종종 거리에서 들리는 독일어를 놓고 '나 저거 한국어로 들려!'하고 능청을 떨 때면 순웅이는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아는 음운으로 소리를 들어'라고 언어학도다운 대답을 내놓곤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오감에 투영되는 감각의 다발 (이건 칸트의 용어였다- 인식론때 김창래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더라) 을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로 분절하고 인식하는 (뭐라고 하셨더라, 적확한 용어가 기억이 안 나) 과정인거지. 

34. 운동을 하며, 혹은 다이어트를 하며 내 몸에 관심을 아주 많이 기울인 덕분에 나는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뼈와 근육과 그것들의 움직임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과거엔 그게 왜 중요한지 알지 못했었는데, 알고 나니 과거 예술가들이 왜 해부학을 공부했는지 (그리고 지금의 그림러들이 왜 인체 연습을 하는지) 알게 됐다. 존잘들은 다 존잘들이었어... 특히 대리석 조각들의, 풍만하고 옴폭 패이고 매끄럽고 때론 부드러워보이는 근육들을 볼 때. 에곤 쉴레의 누드는, 취향이 아니라 아름답다곤 말하지 못하겠지만 대단히 대단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어두운 바탕에 얼룩덜룩 거칠게 문대놓은 색깔들이 어떻게 뼈와 근육의 덩어리와 흐름을 표현하는지에 감탄한다.

35. 어느 순간부터 작품들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묘사하고자 했던 원본을 상상하게 되었다(그만큼의 레퍼런스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예를 들면 초상화들을 볼 때 '실제로 어떻게 생긴' 사람을 이렇게 그렸을까, 하고 떠올리게 되는거 말야. 
  에곤 쉴레가 그린 여자의 몸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내 몸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잘 아는' 여자의 몸은 그것밖에 없으니까(특히나 그 그림들의 몸이 여느 연예인들처럼 가늘고 늘씬한 대신 접히는 뱃살과 팔다리에 울퉁불퉁 붙은 지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친숙!). 두 팔을 가지런히 늘어뜨리고 약간 긴장한 듯 정면을 바라보는 소녀의 몸에서 나는 샤워 후에 마주하는 내 맨몸을 떠올리고(Mädchen/Girl, 1917), 활짝 벌린 여자의 다리 사이에서 내 허벅지 안쪽의 부드러운 살덩이를 떠올린다(>Liegende Frau</Reclining woman, 1917). 그래서 에곤 쉴레의 누드 앞에 서면 어쩐지 발가벗은 기분이라 부끄러워져.

36. 생각해보면 다른 누드화들에서는 이런 기분을 못 받았는데. 그것들은 대개 부드럽고 풍만한 신화 속의 몸이었기 때문일까, 에곤 쉴레의 작품이 비교적 최근 - 백년도 안 된 작품들이라니! - 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에곤 쉴레의 작품이 그런걸까?

37. 아이패드며 핸드폰이 상태가 안 좋아서, 배터리가 쑥쑥 떨어진다. 지금 쓰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은 감상들이 있다. 급하게 적느라 적확한 표현을 놓치게 되는데, 다듬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어서 다급하게 우겨넣게 돼. (욱여넣게?)

38. 에곤 쉴레가 그린 그림의 남자들은 모두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모두 자기 자화상의 얼굴을 닮았고, 자기 자화상은 자기 얼굴이랑 상당히 닮았다.

39. 에곤 쉴레는 별로 안 좋아하니까- 하고 가이드를 사지 않은 것을, 눈먼 엄마의 그림 앞에서 후회했다.

40. 에곤 쉴레는 특히 인체에 능하(ㄴ것같)다. 사람의 몸을 조각조각 내어 투박하고 건조하게 재조립한다. 특히나 어두운 색감들. 내가 에곤 쉴레의 그림을 왜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어렴풋히 설명할 수 있을것같았다. 그의 인물들은 잘 마른 장작처럼 퍼석하게 비틀어져있어. 인간의 몸이 입은 온갖 부드러움과 아름다움과 풍요를 걷어버린 채 마치 뼈다귀만 남은 것 같은 강렬함, 보다 고전적인 교훈으로 표현하면 결국은 시간이 앗아갈 한때의 겉껍질을 벗어버리고 죽음 앞에 하잘것없는 존재로 선 인간의 모습.

41. 어떤 것들은. 그래서 참 별로야... 저 의도적인 초록색과 파란색. 물론 안 그런 작품들도 있고. 개인적으론 무하도 그렇고 에곤 쉴레도 그렇고 현대의 일러스트레이터를 보는 것 같다. 

42. 그러나 존잘은 존잘이다. 

43. 에곤 쉴레라는 인물 자체엔 관심이 없어서, 관련된 사진자료나 편지같은건 휙휙 넘어간다. Wally도 마찬가지야. 그녀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녀가 살았던 곳, 등본, 사진, 편지, 그녀가 후에 종군간호사가 되었으므로 종군간호사의 삶에 대해-가 왜 필요하지?

44. 다리 사이에 손을 갖다댄 여성의 스케치 제목을 보고야 reclining이 마스터베이션의 우아한 표현인가, 했다. 

where I want to go

you never should loved me the way you did, 노란 네온
얼굴을 흩뜨린 스티치
파란 과슈, 누드 크로키, 나를 움직이는건 나예요. 나를 말해요.
마스터베이션하는 여자, Those who suffer love
I love solitude.... More solitude. 흰 네온

웅크린 팔, 여우, you have no idea how safe you make me feel, 대문자.
엎드린 여자, 기어오는 방울뱀, without him she had no mirror, 대문자.
순록, 엎드려 매달리고, i whister to my past do i have another choice, 대문자.
누워있는, 얼굴과 팔과 뒤섞여 형체를 알 수 없는, there is nothing left but you

돼지에 올라타 머리를 쏟아지듯 늘어뜨린 사람,
미루어 짐작하는 제목, i tried this just the once

loney chair drawing

(2015. 5. 24. 17:07 / @Cafe Bistro)

레오폴드를 다 돌아봤을 땐 네시가 조금 더 됐던 것 같다. 다섯시간을 있었지만 그 중 한 시간은 졸다 멍하니 앉아있다를 반복했을걸. 취미를 박물관에서 넋놓고 앉아있기로 바꿔야겠다. 일단 나와서 아무렇게나 걸었다. 뮤제움카르트를 나오면 바로 양 옆에 쌍둥이 궁, 한쪽은 자연사 박물관이고 한 쪽은 미술사 박물관. 독일어에서 자연의 반대말은 인간이 만든 것- 쿤스트, 예술인거래. 그래서 쌍둥이 궁에 나란히 놓은걸까. 두 박물관 사이를 쭉 걸으면 하우프부르크? 왕궁. Haup는 높은, 중앙, 이런거 비슷한 뜻인거같은데 하우프가 붙으면 무조건 좋은건가봐. 독일어 꿈나무!
문을 통과하면 커다란 광장이 있었는데 말똥 냄새가 무지무지 났다. 빙 둘러서 과거엔 궁전이었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것 같은 건물들. 양쪽으로 선 기마동상. 왼쪽 잔디밭에선 커다란 그물로 비눗방울을 불고 있었고 아이들이 모여 까르르르 웃고 있었다. 지나쳐서 왼쪽으로는 아주 예쁜 꽃 정원. 날씨가 맑았더라면 완벽했을텐데, 정말로 동유럽 날씨는 날 안 도와줬다. 하늘이 '구름으로 꼼꼼하게 덮여있었다'.

걷다 보니 지금도 공연이 있는 것 같은 커다란 건물,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찍고. 건너편엔 공사중인 커다란 궁,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찍고. 그러고 71번 트램에 탔다. 어딜 가는거냐고? 몰라! 어쨌건 '링 거리'라고 불리는 (짐작) 걸 보니 빙글빙글 돌 거 아냐? 교통권이 있으니까! 트램의 의자는 초등학교 걸상처럼 나무로 되어있었다. 트램에 타고 나서야 지도를 살펴봤다. 71번은 반원을 그리며 링 거리를 돌다 무슨 플라츠 - 내가 내렸던 역 - 에서 외곽쪽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창 밖을 잘 살펴보다 아침에 걸어왔던 그 거리를 발견하고 냉큼 뛰어내렸다. 아무 트램이나 타고 아무데서나 내려서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서 저녁을 먹겠다는 계획은 취소. 춥고 배가고팠고, 여긴 시내라 의외로 먹을게 없는 동네란말이야... 

아침에 노렸다가 실패했던 Cafe Bistro. 큰길 바로 곁에 위치하고 있었다. 혼자 들어가자 영어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주문정도는 할 줄 알아! 비테, 하고 부른 뒤 아인 슈니첼 비테, 당케! 하면 된다. 고민하다가 비엔나식 슈니첼을 닭고기로 골라봤다. 감자랑 샐러드랑 세트. 맥주는 추천받아서 더 단 걸로 했다. 물 사마시기 아까우니까 자꾸 맥주를 마시게 돼... 이젠 맥주가 썩 나쁘지 않다.
아침엔 빈 속에 커피, 오후엔 빈 속에 맥주, 이따 밤엔 일찍 자려고 40도짜리 술 한잔. 속에 좋지 않은 것들 뿐이네.

맥주가 먼저 서빙됐고, 뒤이어 닭고기 슈니첼이 나왔다. 접시에 토막낸 감자, 위에 소스 없이 달랑 올라간 고깃덩어리, 한쪽인 레몬 한 조각. 어... 꼭.... 치킨너겟 맛인데? 물론 슈니첼은 고기가 부들부들해서 좋다지만, 어... 그렇습니다 관광객용 식당을 잘못 찾은건지 닭고기가 문제였던건지 비엔나식이 문제였던건지 모르겠지만, 슈니첼은 독일에서만 먹는걸로. 벌써 다시 먹고싶다... 홀란드 소스랑 예거 소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발사믹 드레싱에 얇은 토마토 두 쪽만 달랑 올라간거라도 샐러드가 너무 반가웠다. 야채라곤 양배추밖에 못 먹고 있었단말야. 들어가는 길엔 마트에서 과일 한 팩이랑 요거트랑 사가면 완벽할텐데, 일요일이라 마트 닫았겠지. 그리고 신나게 먹다가 깨달았어. 이거... 상추잖아? 적상추? 뜨든... 상추 샐러드라니... 왠지... 이상하고... 정겹고... 삼겹살 먹고싶다...

혼자 먹는 저녁(많지는 않았지만)들 중 처음으로 레스토랑에 앉아서 먹는 정갈한 음식이었다. 혼자 먹는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밥을 앞에 두고 아이패드를 두들기는건 바쁜척하려는게 아니라 오늘은 꼭 일기를 마무리짓고 자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체코에 있다 오스트리아로 건너왔더니 한 끼에 2만원 가까이 나올 밥값이 아까워졌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해주자. 오늘 힘들고 피곤했잖아. 먹지 않으면 쓰러져서 못 일어날 것 같았어...

오늘은 일찍, 여덟시쯤, 늦어도 열시엔 잘 거야. 내일은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야지.

유쾌한 웨이터 (조금씩 온갖 언어를 구사했다. 도피오, 도피오!) 가 식탁에 꺼내놓은 피포를 보고 He or She? 하고 물어봤다. She, Queen! 하고 대답하자 Hungry, Hungry! 하면서 내 접시를 향해 쩝쩝쩝 입맛 다시는 소리. 옆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두들기던 할아버지까지 허허 웃었다.

내일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재래시장의 아침을 보고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아침이 궁금해졌다. 여섯 시부터 시작된다니까 그 전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섯 시에 열리는 시장의 아침을 구경하고 아침을 먹고(조식이 없으니까), 열 시 오픈에 맞춰서 벨베데레에서 하루종일 클림트를 볼 거야. 일찍 끝난다면 시내로 나와서 구경을 한 바퀴. 내일은 날이 좀 맑았으면 좋겠는데. 대신 일찍 자야지. 모레도 일찍 일어나서, 여덟 시 반 오픈 근처에 쇤브룬 궁을 갔다가, 점심시간쯤 미술사 박물관. 

그 다음 날도 일찍 일어나야 해. 아침 여덟 시 버스를 타려면 숙소에서 여섯 시 반에는 체크아웃을 해야하니까!


옆 테이블 할아버지와 즐거운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피포가 왜 Queen인지 한참을 설명하고, 박물관들과- 교수였댔던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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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1: 2015. 5. 31

어제 2016. 5. 31. 22:59
11:47 Obrovac 오블라바츠

12:32 Zadar

13:23 Biograd, 8분 늦어지다

14:02 드라큘라 상하권을 다 읽다

오렌지 냄새

16:11 스플리트

19:24 "나가! 빨리 나가!" 여권검사,

19:33 네온, 보스니아, 20분휴식

20:28 슬라노!


-

(2016-05-31-22:36)

유럽 여행 31일차, 플리트비체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11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크로아티아를 길게 종단하던 날.


한 번에 가는 버스인 줄 알고 탔는데, 스플리트에서 한 번 내려 갈아탔다. 의외로 비용이 많이 들어 놀랐다. 스플리트가 생각보다 훨씬 고풍스러웠기에 놀랐고 -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이틀쯤 빼서 스플리트에 머물렀었어도 좋았는데! - 반쯤 졸다 깨다 책 읽다 하는 시간동안 창가로 스쳐 지나가는 크로아티아의 풍경이 몹시도 다채로왔으므로 즐거웠다. 동유럽을 이미 지나쳐 놓고선 <드라큘라>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는 <그리스 인 조르바>를 시작했던가, 조르바를 먼저 읽고 드라큘라를 읽었었던가. 남북으로 좁고 길게 놓인 크로아티아의 밑단은 보스니아로 끊어져 있기 때문에, 중간에 국경을 두 번 넘었다. 경찰이 차에 들어와서 여권을 검사했다.


남하하는 버스의 오른쪽 창가에 앉으면 크로아티아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를 볼 수 있다. 바다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더라. 생전 처음 보는 색깔과 모양의 바위산들, 좁고 구불거리는 절벽 길을 잘도 달렸던 버스. 


크로아티아를 여행할 기회가 된다면 버스보다는 차를 빌리는 것이 낫겠다. 자그레브에서 시작해 장거리 버스의 길을 따라 크로아티아를 길게 달려 내려오면 산과 계곡과 바위와 바다를 모조리 만날 수 있다. 플리트비체도 좋았지만 하룻 밤을 잔다면 플리트비체보다는 조금 남쪽, 계곡물 위로 집들이 지어진 조그맣고 아름다운 마을이 - 네 글자였는데 기억이 안 나! -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두 주 정도 여유를 가지고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천천히 달리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머물다 떠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중간 적어뒀던 지명들은 그만큼 '머무르고 싶었던' 강렬한 이미지들이 남았던 곳들로 기억한다. 오블라바츠는, 잠깐 졸다 깼는데 우악스럽게 덩어리진 회색 바위산 기슭을 우당탕탕 달리고 있던 곳. 바위들이 창가로 달려와 부딪히는 줄 알았다니까. 스플리트의 둔중하고 넓게 퍼진, 마치 좁은 장벽처럼 둘러진 산도 낯설고 신기했었는데 그리스를 다니면서는 익숙해 질 만큼 실컷 보았다. 동유럽의 산들은 그런 모양새로 기억이 남는다.


오렌지 냄새는, 흠. 아!

복도 건너 한 줄 뒷 자리에 엄마가 딸아이 둘을 데리고 탔는데, 칭얼칭얼대는 아이들에게 오렌지를 까 먹이는지 오렌지 냄새가 확 풍겨왔었다. 그 때 나는 오른 쪽 자리를 사수하느라 뜨거운 햇볕에 녹아버린 초콜릿을 먹고 있었는데. 관심이 가서 보지 않는 척 귀 기울이고 있었다. 세 모녀는 스플리트를 한참 지난 어느 작은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차를 대 놓고 기다리던 남편이 세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며 가방을 받아드는 모습을 보았다. 적당히 해가 스러진 시각이었고 하늘이 다정하게 저물어 있었다.


그런 기억들. 일 년 전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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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2일 일요일에서 13일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12:24

꽃보다 할배 그리스 편을 보면서.
금요일엔 우편함이 가득 차 있었다. 미국에서부터 날아온 수영복(은 사이즈 미스로 환불 예정), 인디고에서 배송받은 <642 things to do> (Y선배에게서 받은 기프트카드로 샀다. 고마워요! 사고싶어서 내내 만지작거리다 놓고 온 책이었는데... 여행 내내 그려야지), Paper Blank의 고전제본 양장 일기장(걸쇠가 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윰의 엽서. 운동가는 길에 찾아서 급하게 열쇠로 봉투를 뜯자 클림트의 여자가 그려진 엽서가 나왔다. 

윰에게 보내기로 한 편지를 아직 보내지 못한 이유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손편지를 쓸 마음이 여력이 안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가 윰을 아주 많이 좋아하니까. 이 이야기를 쓰고싶었는데 어렵지. 쓸거야, 곧. 아마 내가 편지보다 먼저 독일에 닿지 않을까.

PS. 질문을 하고 싶어요: 당신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요?

100일간(희망사항)의 장기 여행을 보름 앞두고, 달랑 런던행 티켓 한 장 끊은것 외엔 이동경로도 숙소도 예산도 하나도 잡지 않은 채 - 이렇게 쓰니까 너무 적나라하게 대책없어 보인다 - 벌써부터 지쳐서 문득, 아무데도 움직이지 말고 한 달 방을 잡고 틀어박혀 있을까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버릴까, 생각하는 나에게 윰은 물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서, 여행하듯 살고싶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드리아나는 어디에도 삶의 뿌리를 두지 않고 부표처럼 부유하듯 살았고, 그래서 그녀가 사랑하는 과거에 남을 수 있었다. 소설가 길과 그녀의 차이점은 거기에 있지. 그는 두 다리를 현재에 단단히 붙박이고 서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기반을 선뜻 떠날 수 없었던 거야. 뒤집어 말하면 아드리아나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책임져야 할 것이 없었고, 그래서 그녀는 삶을 늘 여행처럼 살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드리아나를 부러워하고 싶었다.

낮밤, 눈동자 색, 첫인사까지 모두 바뀐 곳에선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고, 또 아무도 나를 위로하지 않겠을 것이다. <구해줘>였을까, 감흥 없게 읽었던 몇 권의 기욤 뮈소 중 하나, "제 이름은 줄리. 변호사예요." 변호사인 친구의 코트를 몰래 입고 나온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한 거짓말이 참으로 매력적이어 보였다. 그 후 나는 자주 거짓말을 하는 상상을 했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이제까지 살아온 이야기도 모두 바꾸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 아무 이유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거야. 아니, 아무이유없지는 않지. 나는 나이고 싶지 않았고, 나를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펍에서 만난 남자들에게 내 이름을 Dianne으로 알려주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실은 한 번 쓰고 버릴 이름이었거든, 그걸 이렇게 오래 쓰게 될 줄 몰랐어(필명이 필요했을 때 임시로 가져다 붙인 Celene를 꽤 오래 썼던 것처럼). 어떤 남자들은 집요하게 내 '진짜 이름'을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퍽 다정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피차 서로 듣고 잊어버릴 이름이었지만 나는 내 이름을 가르쳐주기 싫었고, 그렇다고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못 되었기 때문에 끝내는 못이겨 Dan, Won, 하고 또박또박 말해주곤 했다. 나는 다른 이름들을 대는 연습을 했다. I'm Daniella, Danny, Denise(Dawn은 안 된다. 내 이름인데도 어색하게 발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사실 그런 대화에서의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오히려 아무 의미 없기에 사소한 거짓말일 수 있는데도, 수없이 연습했는데도, 막상 기회가 오면 나는 늘 실패하곤 했다. 정말로 좋은 거짓말쟁이는 못 될 건가봐.
허리로 뻗어오는 손이 싫어서 재빠르게 자리를 떴을 때 - 거절하는 요령이 없었으므로 - 나를 붙잡았던 남자는, 나보고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건 예의바르지 않다고 했다(정말로,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는 다정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양 뺨에 쪽 소리를 내며 인사를 나눴고 나는 입술에 키스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고 돌아서며 'not being polite' 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왜 그러면 안 되지? 어느정도는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내키지 않는 일들을 거절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무례해지지 못할 건 뭐야?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인데?

내가 그 때 Daniella였다면 나는 조금 더 내 멋대로 굴 수 있었을까?

외국에 있다는 사실은 내게 의외의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딱히 '서양 사람들은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니까' 따위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 곳에서 나는 어차피 이질적이었고 어차피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 이름을 몰랐고 아무도 나를 눈여겨 보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았다. 또 아무도 나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때로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가슴을 두꺼운 겨울옷으로 감추고 시내를 걸었고 때로는 등이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신나게 춤을 췄다. 그 '타인의 시선'은 실제로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재된 것이었지만, 내 마음이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장치가 필요한거지, 내가 낯선 땅에 있다거나 오늘이 할로윈이라거나, 그런거. 그건 신나는 일이었지만, 조금 외로운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자유로웠다, 적어도 그건 내가 하지 않을 일들이 아니라 하지 못한 일들이었으므로.
내가 다른 이름을 썼다면 나는 조금 더 못되게 행동했을까? 글쎄. 나는 두 번 볼 사람이기 때문에 친절하고,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례하게 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제안을 거절하고, 싫은 농담에 웃지 않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나를 책임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 나는 엉망진창이 되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건 바깥으로 향하기보다는 안쪽으로 향하는 충동이었다. 남들에게 못되게 굴기보단 나를 망치고 싶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으면 좋겠어. 오늘만 사는 년처럼 굴고 싶었다. 커다란 태피스트리를 상상한다. 내 뒤로 질질 끌리는건 이제까지의 하루하루의 흔적들로 만들어진 '나' -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기대하는 - 가, 앞으로는 지금의 순간들을 엮어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 낼 텅 빈 공간이. 잘 드는 가위로 그 중간을 뚝 잘라 제멋대로 난도질하고 싶었다. 무섭고 자신이 없어서.

또 솔직하고 싶어서.

하지만 한 번 끊어진 천은 다시 잇대 엮을 수 없지, 그래서 나는 할 수 없는거야. 나는 단수가 아니니까. 나는 그 많은 나들을 책임져야 하니까, 그걸 외면할 용기가 없으니까. 어느 날 나는 내가 없어진대도 이 세계엔 어떠한 균열도 결핍도 없을 것이라고 썼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만약 아무도 나를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면, 가족도 친구도 없다면, 나는- 아, 교수님,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나쁜 짓'의 엑서사이즈 때 제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낯뜨거워서 차마 상상으로 꺼내놓지도 못했던, 그것을 아셨을까요.


그러나 나는 내 세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작지만 사랑스러운 나의 세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뼘씩을 겹치고 있는 내 세계. 그것을 포기할 때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계들에도, 그곳에 내가 차지한 자리만큼, 얼마간의 균열이 일 것이다. 내게는 그만큼의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바란다. 일상과 단절된 곳, 베어내지는 못 하더라도 접어 숨겨놓을 수는 있는 날. 적어도 아무와도 맞닿지 않는 곳에서 나는 단수일 수 있으니까, 너의 나를 책임지기 위해 바둥거리지 않아도 좋을테니까. 도피하기 위해 여행을 간다. 여행하듯이 살고 싶다.

한편 혼자 하는 여행을 견딜 자신이 없다는게 아이러니. 이대로라면 금세 지쳐 주저앉아 버릴 것이 분명하다. 여정에 사람들을 아주 많이 끼워넣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움직일 것이다.


=
(2016-01-24-13:51) 밀린 일주일치 일기를 써야하는데 영 힘이 없다.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제목만 달아놓고 말았다. 엉망이 되고 싶은 기분에 젖어있었던 한 주였고, 그래서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때의 일기 두 개를 찾아 대신 올려놓는다. 에버노트의 A. diaries at Canada 폴더, '결핍'으로 검색. 일기들을 날짜순이 아니게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밀린 일기는 반드시 쓸 것이다. 미뤘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이므로. 돌아오는 주에는 일기를 붙들고 있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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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9일 /toronto

어제 2016. 1. 24. 13:50
2014년 12월 9일 화요일

자는게 엉망이 됐다. 약 먹고 짙게 자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죽은 듯 자다가 두시간 간격으로 깼다. 너무 오래 푹 잔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눈을 떠보면 두시, 네시, 여섯시, 일곱시였고 그때부터는 십오 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었다. 아홉시 반에야 일어날 기분이 들었고 급하게 샤워하고 젖은 머리로 시프트를 뛰어갔고, 패트리샤가 이번학기에 내가 떠난다니 물기어린 눈으로 안아보자고 했고, 돌아와서는 시험 일곱시간 남았네, 를 카운트하며 또 잤다. 웅크리고 손에 쥔 핸드폰이 십오분 오분 간격으로 울릴때마다 눈을 떴다가 감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울린다. 하루종일 어떻게 이 느낌을 설명할까 고민했다. 걸을 때마다 뇌가 흔들거리고 뒷목이 뛰고 가끔은 아랫입술이 떨린다. 저녁 일곱시부터 열시까지 있는 시험이라 이미 주변이 어두울 때 출발했는데 머리가 너무 흔들려서 이대로 시험장에서 쓰러지면 시험 보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그럴 일은 결코 없을것이다. 퀸즈파크를 가로질렀는데, 어둡고 길이 안 보여서 한바퀴 빙 돌았다. 건너편에는 불빛들이 많았지만 어느 것도 이정표가 되지 못했다.
머리가 휘청이는 느낌은, 어, 아주 예전에 한꺼번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카페인 과다로 쾅쾅거렸던 때랑 비슷하기도 하고, 그때도 길 걷는데 목구멍까지 심장이 쾅쾅 뛰면서 눈앞이 휘청휘청하고 괜히 눈물이 났었지. 아니면 마치 뒷목에서, 뇌에서, 입술에서 맥이 날뛰는 것 같다.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다이어리를 쓸 때 의식적으로 문장에서 '나는' '내가'라는 주어를 생략할 때가 있다. 괜히 나는 나는이라고 나를 부각시키는게 싫었다. 이건 아주 오래 전- 일인칭 삼인칭을 배우던 문학수업시간부터 시작되었었다. 내 일기는 일인칭인데, 일인칭도 삼인칭도 아닌 글을 쓰고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서는 쓸 수 있는게 많지 않았다.
일학년 첫 학기 수업을 들을 때 - 아마 데카르트를 가르치시면서였을까, 김창래 교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덜컥 그 '나는' 이 무서워져서, '나는' 에서 도망치기 위해 애썼는데,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나는 나는이 싫다, 하고 말할 수 밖에 없어서, 거기서 결코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았노라고 하는 얘기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늘 교수님이 좋았다. 나와 같은 순간을 맛보았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감히 생각했다. 그 이후에도 수업을 듣다가 더러는, 반 발짝 앞질러 생각했다고 뿌듯하면 꼭 내 그 생각이 교수님의 궤도 위에 올라가있곤 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 왜 부전공을 철학으로 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사회학은 버리고싶은데, 그럴거면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수업이나 들을걸.
철학공부를 하고싶다.

세계에 대해서 고민할 때는 차라리 나았다. 내 머리로는 감당할 수 없이 큰 것들들 사유하다보면 문득 아득해서 - 나는 그 아득함을 조금이나마 엿보았다는 데 감히 경이를 느낀다. 그것마저 모르던 시절이 얼마나 길었는지, 내가 무지하다는 것조차 무지하던 날들 - 그 앞에서 나는 조그맣다못해 잊혀졌다.
차라리 그랬으면. 이제 나는 나이고 싶지 않다. 조단원이고 싶지 않은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또 무엇도 되고싶지 않다. 그냥 존재이고싶지 않다.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면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지도. 죽고싶다, 는 무거운 말이고, 무섭게 능동적이다. 반면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 건 수동적이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없잖아. 이렇게 쓰고있으면 우울증에 죽고싶다고 노래부르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은 안 하는데. 하하. 가끔 이런 기분에서 스스로를 끌어올려 훌륭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을 생각하다가도, 그냥 실시간으로 흑역사를 적립하고 미래의 수치심을 예약하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이'는 교수님이 자주 쓰시던, 좋아하시던 단어였다. 어느 철학자인지는 모른다. 아마 독일어 같았으니까 칸트겠지(아니면 말고). 교수님은 그리스어나 독일어 철학 개념어를 자주 원어로 발음하셨다. 멋있어 보여서 좋았다. 자꾸 들어 외우다보면 거기 전제된 사유까지도 내 것이 된 느낌이 들었다. 경이. 

과일이는, 절망을 직시한다면 그것은 절망일지언정 패배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나를 받아들이라고도. 어떻게 그런단말이야? 무기력증의 극복방법. 자기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 머리로는 알지만 어려운 말들이다. 어떻게?
신화학 시험, '신화의 영웅 중 한 사람을 고르고 (예: 아킬레우스, 오이디푸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혹은 안티고네 등) 그 인물의 어떠한 특성이 인물을 위대하게 혹은 문제적으로 만들었는지 서술하시오. 어떠한 요인이 인물을 이끌거나, 신화의 플롯에 작용하였습니까? (20점) 오이디푸스. 그리스 신화는 '운명'을 중시하고, 오이디푸스는 인간이 운명 앞에서 얼마나 나약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그렇게 배웠다. 2학기 사표시간에. 프레젠테이션 만들고 발표까지 했는데도 정확히 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래서 그냥,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벗어나려는 어떠한 노력도 결국 인간을 예정된 운명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 결과 앞에서 외면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가를 치렀다는 점이 강인하다고 썼다. 인간은 운명 앞에서 나약하지만, 그 나약함을 의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강인함이라고. 솔직히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나도 모르겠고, 영어로 써서 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싫어한다. 운명은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강매하곤 비싼 값을 받아간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고 테베의 왕이 되는 것이 그의 의지가 아니라 운명된 일이었다면, 어째서 테베에는 왕의 패륜에 대한 벌로 전염병이 돌았단 말인가? 의도하지 않고 원하지 않던 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오이디푸스는 얼마나 억울할까.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의지적으로 그 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눈을 찌른다. 대가를 치름으로 책임까지 가져가고, 그건 어쩐지 앞선 일들을 운명의 이정표를 따르되 자신의 발로 걸어온 길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이걸 영어로 다 쓸 수가 없었다. 망할 어휘력에 망할 표현력...).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이디푸스의 강인함이라면, 결국 다 비슷한 결의 이야기가 아닐까, 절망을 직시한다는 것도 나를 인정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게 그렇게 영웅적인 행위라면 내가 못 하고 있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어느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다. 도와줄 수도 없고. 오직 나만이, 나 혼자만이.


내가 없더라도 세계엔 결핍도 균열도 없을것이다. 아쉬운가 하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세계의 풍경에 나는 늘 방관자였으니, 그래도 좋을테다.

말이 더 많았는데 한잠 자고 나니 다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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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16. 1. 17. 11:22
2014년 9월 26일 금요일 오후 세시 반. 으아... 좋다......! 

튜토리얼은 또 빼머금. 리딩을 했는데 도저히 못알아듣겠어서 포기했다. 하하 씨발 될대로 되라지. 그리고 큰 결심을 했다. 드랍할거야!
21학점 7전공에도 굴하지 않던 내가 드랍을 생각하다니. 드랍하지 않는건 수업에 대한 예의라 여겼는데... 모르겠다. 감당 안 되는거면 한 개 빼야지 뭐. 아침 9시 1교시 수업은 무리였다고 생각해... 근데 드랍기간이 11월 3일까지기때문에, 10월은 하는데까지 해보고 중간고사 본 다음에 결정해야겠당 

뉴 폴ㄹ나그래퍼라고...? New Pornagrapher? 하여튼 밴드 이름이 그렇다고 한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적어놔야징

여튼 그래서 수업 째고 사무실 잠깐 들렀다가 자전거 끌고 호수로 나왔다. 아직도 호수 이름을 잘 모르겠쟝... 레이크 온타리오? 맞나? 오는길에 아마존으로 잘못 주문한거 반송하면서 우체국에서 엽서를 사왔다. 별로 안 예쁘지만 네 장 샀다. 프리페이드 우표 붙어있는걸로 네장에 만원+! 해외우편이 2.5$라고 한다. 펜을 가져왔다면 여기서 쓰는건데... 집에 가는길에 노끈 사서, 방에 노끈으로 매달아놨다가 한장씩 써야겠다. 나한테 쓰는 것도 한 장.

지난주 금요일인가 토요일에 왔었었는데, 두 번 오는 길이라 찾기 쉬웠다. 그래서 호변도 쭉 돌아보고 옆쪽까지 나왔다가 슈가비치를 발견. 모래는 인공적으로 깔아놓은것같았고 쓰레기랑 나무조각 섞여서 좀 더러웠지만, 반짝거리는게 예뻐서 신발 벗고 맨발로 들어왔다. 옆에서 밴드가 조그맣게 공연하던데, 오늘 저녁에 있는 시크릿콘서트 홍보차라고 (잘 못알아듣겠다 하여튼 뭐 그런거래) 한다. 이름이 뉴 폴ㄹ나그래퍼라고 하던데 스펠링을 몰라서 일단 적어만 뒀다.

선글라스 쓰고 타이핑하는데, 아이패드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이 마음에 든다... 앞머리가 바람에 넘어갔는데 사연있고 카리스마있는 차도녀같쟝...
요즘 다시 날씨 풀려서 포근포근 따스하고 햇살 좋은데, 무서워서 여전히 잘 챙겨입고 있다. 아침에 나갈때 재킷을 챙길까말까 고민하다가 안 챙기고 걱정하는데 사람들은 반팔에 민소매에 숏팬츠에 가끔 남자들은 상의탈의까지 아주 여름패션으로 돌아댕겨서 깜짝깜짝 놀람. 오늘은 늦가을-겨울용 맨투맨에 재킷은 안 입고 대신 기모들어가 뽀송한 겨울용 쫄바지 입고 나왔는데 약간 덥다. 레깅스'만' 바지처럼 입고다닌다는게 진짜였어서, 언니들 엉덩이를 볼때마다(팬티라인이랑 그 위아래 삐져나온 살까지 다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이는데!) 깜짝깜짝 놀랐는데 나도 용기내어 시도해봄. 물롱 맨투맨이 엉덩이 덮는 큰거라 가능했다. 기분 이상해... 그치만 치렝스 입고 자전거 타나 레깅스만 입고 자전거 타나 존나 그게 그거같쟝. 그래서 해봄.


레이크쇼어(뭐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호숫가? 호변? 양쪽 다 이상해... 왜냐면 여긴 한국어로 말하는 '호숫가'와는 엄청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단어 '레이크쇼어'도 사실은 호숫가니까 그 뜻을 더 잘 나타낸다는건 아닌데, 나는 이런 광경을 '레이크쇼어'라는 단어로 배웠기때문에 자꾸 레이크쇼어라고 부르게 된다. 영어단어 마구 쓰는걸 안좋아해서 호숫가, 호변으로 순화하려고 애써봤지만 안돼. 여긴 호숫가가 아니라니까?)에는 두번째. 첫번째 여기 왔던 날의 충격을 기억한다.


지난 주 금요일인가 토요일인가, 자전거는 꽤 타는 편이라고 생각해서 용감하게 도전해봤었다. 끌고 나가면서 사람들 도움을 받아서 바퀴도 바람 넣고 안장도 조절하고, 처음 타는 자전거에 처음 타는 길이었는데 대책없이 갔다가 오는길에 비를 만났다. 어두워지니까 안경 없는데 길도 잘 안 보여서 계단인걸 모르고 몇 번이나 자전거로 넘어가려고 했던 적도 있고 꽉 막힌 차선에서는 차들도 신경질적이었고, 비오니까 미끄러지고 어둡고 눈뜨기 힘들고 하여튼 그래서 그날 일기 쓰다 못 썼었는데...

빙글빙글 돌아돌아 자전거를 끌고 왔다가, 웬 고급 아파트단지 입구 마당처럼(잠실같은데 아파트단지 가면 정문 들어가고나서 있는 넓은 대리석 깔린 마당같은데) 생긴걸 지나자 물이 보였다. 단정했고 갑작스러웠다. 바다긴 바다인데, 영화에 나오는것같은 바다라고 생각했어. 현실감 없는, 생활감 없는 바다.

비행기에서 지도 찾아봤을때 5대호에 속한 그 무슨 호수가 한국을 다섯개쯤 집어넣어도 거뜬할것처럼 넓던데, 이게 그 호수인지 다른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컸다. 갈매기도 있었고 배가 잔뜩 정박한 부두도 있었다. 처음엔 그 부두를 보고 아 여느 바다랑 다를 것 없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딘가 기묘하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낯선 곳, 서양이라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는데 곧 이유를 알았다.

부유해보였다.

바다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바다는 머릿속에 있는 '바다!!!!! 꺅 바다! 짱조아! 바다!!!' 하는 커다랗고 예쁜 관념적인 바다에 가깝다. 사실은 바닷가나 부두에 가는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거기에는 외면할 수 없는 어떠한 삶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그런 모습을 보면 불편해진다. 왜때문인지 모르겠어. 그런 삶이 모두 드라마나 인간극장마냥 힘들고 고달픈것도 아닐거고,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숭고한 현장이라는걸 아는데도, 그 쨍하게 밀려드는 색채들을 보고있으면 마치 사회비판영화를 보거나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는 마냥 숨이 턱턱 막혀온다.
여기엔 그런게 없었다. 바다 특유의 짠 물비린내도, 하다못해 강이나 하천변에만 가도 맡을 수 있는 하수 냄새도 없었다(아마 호수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고 느껴진건 그래서였을거다. 물가에 가까이가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없었거든). 둥둥 떠다니는 물거품이며 쓰레기도 안 보였다. 물은 깨끗했고, 갈매기들은 그악스럽게 울어대는 대신 풀밭을 뒤뚱거리며 걸어다녔고 기러기들은 발끝으로 물결을 일으키며 수면에 미끄러져 내려앉았다(솔직히 저 새 뭔지 모르겠다. 갈색이고 갈매기보단 늘씬하고 목이 길다. 오리같은데 오리가 저렇게 떼지어 날아다닌단말야? 기러기라는 심증만 있음). 배가 잔뜩 정박한 모습은 한국이랑 같았는데, 곧 그 배들이 어선이 아니라 요트라는걸 깨달았다(사실 요트인지 모르겠다. 뭔가 모터보트같은 모양이었지만 훨씬 컸다. 그 옆 부두엔 선체는 작고 날렵한데 돛이 엄청 큰 배들이 있었다. 걔가 더 요트같아서 뭘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잖아). 녹색 물이끼 묻은 파란 몸체 대신 배들은 하얗고 깨끗하고 컸다. 잘 모르겠지만 비싼 것만은 확실했다. 흩어진 조개껍질 굴껍질과 갯강구들로 더러운 길 대신 나무 데크가 깔린 물가에서 사람들은 친구끼리 애인끼리 모여 놀았다. 출항준비중인 커다랗고 하얀 페리 창문으로는, 깨끗한 식탁보가 깔렸고 칵테일바까지 구비된 만찬장이 들여다보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이상하고 아주 기묘했다. 

비행기가 날아다닌다. 여긴 비행기가 낮게 난다. 미국 미네아폴리스에서 토론토 행 비행기를 탔을때, 비행기가 더 올라갈줄 알고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집 한개한개가 희미하게 구분 갈 정도의 고도로 날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가 쭉 그 고도를 유지한 덕분에 오면서 호수도 보고 (그 호수가 이건가?) 엄청 높게 있는 타워도 봐서 깜짝 놀라며 사진찍었다(그리고 그게 씨엔타워였다. 내 눈 앞에 있음!) 남산타워같아 신기했는데 설마 그게 내가 사는데서 이렇게 가까운 동네에 있을줄은 몰랐지.
하여튼 그래서 비행기 소리가 마치 기차역 근처 살면 들리는 기차소리마냥 주기적으로 우우우웅ㅇ 울리며 나기도 하고, 호숫가에선 착륙하려는 비행기도 막 보이고 그러하다.

이상한 기분이다. 네시 십 분, 요 옆 바닥분수에서 발 씻고 볕에 잘 말려서 양말신고 신발신고 집에가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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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16. 1. 17. 11:21
2014. 9. 20 night

19일 금요일 밤 어제, 걸스 무비나잇. 하우스에 UT말고 OCAD라고, 토론토 다운타운쪽 예술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애니메이션 디자인 등 디자인이 대부분이다(그래서 지하 커먼룸 페인트칠을 기대하고있다). 그리고 다들 덕후기질있음... 리지는 어벤저스 팬에 최애가 아이언맨이고, 줄리엔은 셜록 덕후인데 I'm SHER Locked라고 써진 후드를 가지고 있다... 쩌러... 갖고싶다.........!
애니메이션 전공인 나탈리의 여자친구 애슐리는 목소리가 굵고 과장된 액션을 잘 취하는 애다. 처음 도착한 날, 브리나가 나를 지하실로 데려가줬었는데 그때 봤던 애들이 줄리엔, 나탈리, 애슐리. 첫인상은 꼭 스킨즈 보는 것 같았다. 음, 약간 안좋은 의미로? 왜냐면 난 꺆 얘들이랑 같이지낸다니!!!!!!!>< 보다 으아 얘들이랑 같이 지내야한다니...! 나 잘할수있을까 하고 약간 긴장했거든.

좁은 부엌 바닥에 여자애 셋이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예쁘고 마른 여자애는(줄리엔은 조금 중성적인데, 여자애로서도 예쁘지만 가끔 아름다운 남자애 생각나게 하는 얼굴을 보일때가 있다. 특히 말라서 더 그런듯) 검은 머리를 숏컷으로 쳤고, 금발머리 여자애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붙어있었는데 머리를 부스스스 작은 컬로 펌한 여자애랑 숏컷에 검은색 아이라인을 언더까지 그린 여자애였다. 둘이 약간 킬킬킬킬 넋놓고 웃어대서 (나탈리는 리액션이 되게 드라마틱하다. 음, 책의 루나 러브굿을 생각하면 된다) 속으로 얘네 취했나!? 약했나...?!?!?!?!?!?!?!? 하고 생각했거든. 어, 원래 그런 애들이었다. 미안... 하여튼 총체적으로 약간 스킨즈같았다. 귀랑 코랑 피어싱도 엄청 했고.

음 여튼 애슐리를 필두로 다들 노래를 불러대서 약간 자존심상했다. 내가 나를 덕후라고 하지 않는건 그 내공이 부족해서다... 아아 나도 영어 잘하고싶다... 가사 모른다... 못외운다... 게다가 메인테마가 아니라 자잘한 노래들이나 대사를 외워 따라 치는데서 손을 들었다. 갈고닦겠습니다............
하여튼 나 동연실에서 프로즌 틀어놨을때 같이 듀엣해주는 남자애가 있어서 엄청 좋았는데 (노래는 혼자 부르면 싫으니까) 여긴 많아! 심지어 여자애들이야! 개좋음!!!!!!
얘들이랑 헤어스프레이같은거나 하이스쿨 뮤지컬 보고싶다... 나랑 같이 영화보면서 노래불러줘... 얼른 프로젝터를 사야겠다고 한다. 주말에 커먼룸에 틀어놓고 노트르담드파리 봐야지... 아니면 빌려다 내방 벽에 틀어놓고 보든가 흐흐흐흐흫ㅎㅎ 사심가득하다

하고 라면 끓여줬는데 맛있게 먹어줬다. 국물 자작하게 졸여가며 우유 넣고 치즈 넣고 계란도 풀어줬는데도 맵다고 해서 조금 슬펐찌만 8_8...



그리고 그러느라 늦게 자서 오늘은 아침 열한시에 눈떴다. 밍기적대다가 리지가 저기 나갈건데 같이가자고 해서 (시내 나가는것같지만 그래봤자 걸어서 십오분거리) 나가는김에 리즈의 자전거 끌고 자전거샵 갔다가 천원샵이랑 마트랑 고루고루 들렀다 옴. 아직도 동전 구분이 잘 안 가는데 동전 크기가 2달러(은색테두리 황동색) > 1달러 (황동색) > 25센트 > 5센트 >> 10센트다....... 게다가 은색으로 디자인도 똑가틈. 한동안 10센트인줄 알고 5센트 냈다가 돈 모자란다고 하거나 5센트인줄알고 10센트 내고 주섬주섬 동전 찾고있으니 거슬러받고 해서 당황했는데 그게 이래서ㅕㅇㅆ어! 오늘 확실히 알았다! 가끔 계산대에서 허둥거리면서 동전 찾고 이쓰면 다들친절하게 알려준다. 사람들 좋아.. 친절해.......

아, 아침은 떡꼬치. 가래떡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해동시켜 팬에 기름 두르고 살짝 튀긴다음에, 고추장:케찹:설탕 1:1:1로 섞은 소스를 팬에 넣어서 달달달달달 볶으면 된다. 여기에 매실청 넣으면 짱 맛잇는데 매실청이 없어서 석류홍초 넣어줌. 조금 매웠다. 앞으로는 케찹 더 많이 넣어야지. 근데 그거 먹고 계란프라이 한 개 먹었다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배가 안 고프다. 우와 신기해!

자전거샵에 가서 바퀴에 바람을 넣었다. 리즈가 예전에 자기 좋아했던 남자한테 선물받은거랬는데, 작년에 받은것치곤 엄청 낡았다. 앞바퀴가 25년 됐다고 해서 ?!?!?!?!? 함... 샵 아저씨가 (사실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너무 로맨틱하게 생겼다. 오빠랑 아저씨의 어드메쯤되는 나이) 뒷바퀴는 안그런데 앞바퀴가 그렇게 오래된거라고... 그러고나서 봤더니 프레임에 붙은 조절장치같은것들이 다 엄청 낡은 방식이라는게 보였다. 그냥 녹슬어서 낡아보이는 줄 알았는데. 예를 들어 안장 높이 조절하는거. 요즘 자전거는 손잡이같은게 있어서 그걸 돌려서 조일수있는데, 그게 너트로 되어있었다. 자전거 기대 세워놓는 지지대도 웬 쇠파이프 꾹 눌러놓은것처럼 생김. 멀리서 볼 땐 색깔도 그렇고 적당히 낡아 예뻐보였는데 그게 빈티지한게 아니라 진짜 후진거였다. 충격. 또 충격. 으아...? 이 자전거의 낡음은 여기가 끝이 아니지만 일단 여기까지. 
아저씬지 오빤지가 앞뒷바퀴에 바람을 넣어줬고, 자전거 자물쇠 거치대를 프레임에 달려고 드라이버를 빌려달랬는데 거치대도 달아줬다. 상냥해...! 얼만지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It's nothing. 이러면서 가라고 해서 고마웠다. 근데 나가려는데 거치대랑 페달이랑 서로 엉겨서 자전거가 안움직여서 또 불렀어야 했다. 이건 고장났던것도 아니고 엉겼던거라, 자전거 들어올려서 풀어주고 한번에 해결해줌. 사실 그 자전거샵이 꽤 비싼 자전거샵이다. 동네 자전거포 이런거 아니고 약간 고급지고 세련되고 젊은 층들을 타겟으로 한 느낌...? 어떻게 알고있냐면 저번에 자물쇠 사러 들어갔는데 자물쇠들이 죄 50달러 이상 100달러대였기 때문에 엄마야 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자전거 자물쇠 아마존에서 주문했던건데 아저씨가 달아줘서 조금 미안했다. 원래 가게에서 파는것들이 조금씩 비싼건 이렇게 달아주고 바꿔주고 하는 수고비 포함이라 그런건데... 집에 공구통이 없으니까...8_8......! 그래서 바퀴 바람넣으러 가면서도 얼마나 들까, 설마 10달러 넘을까 그러진않겠지 으앙 이러면서 지갑 꼭 부여잡고 혹시혹시나해서 100달러짜리 챙겨들고 갔었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중고자전거는 취급 안하고 새 자전거는 420달러부터 시작했다. 비싸뮤... 하여튼 고마워서 달라라마 가는길에 시원한 음료수 있으면 한 세캔 사다가 놓고가고 싶었는데(왜냐면 일하는 사람이 세명이라), 리지한테 고마울때 보답으로 음료수나 초콜릿같은거 갖다주는거 이상한거냐고 물어봤더니 이상하다고 해서 말았다. 으으 한국이었으면 그랬을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한국이 일 있을때 음료수 박스 사가는거 있긴 하지만, 어, 사실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었을때 친구한테 자전거샵 아저씨 감사하다고 음료수 사다드리면 좀 그럴까? 하고 물어봤으면 유난이라고 했었을거같다. 근데 나라면 그냥 했겠지만. 그리고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일들 중에 '보통은 하지 않는', '유난스러운' 일들이 없었던게 아닌데? 나 그런거 그냥 잘 하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로 표현이 어렵고 뉘앙스를 잘 모르니까 망설여지는 일들이 자꾸 생기는데, 와, 앞으로는 그냥 하고싶을때 해야겠다. 딱히 그 아저씬지 오빤지 하는 사람이 잘생겨서 그러는거 아님. 

그렇게 갔다가 돌아오니 세시였는데 밍기적대면서 웹툰 보다가 출발이 늦었다. 네시쯤엔 출발해서 저기 레이크쇼어까지 돌아보는게 목표였느데 여섯시쯤 출발함.
음, 토론토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도시다. 웬만한 데 다 걸어서 한시간 안에 다닐 수 있다. 다운타운까지 걸어서 삼십분, 구글 맵으로는 저기 호수까지도 사십분이면 간다. 그게 아마 온타리오 레이크일걸? 지도 보면 한국보다 큰 호수던데 ;_; 오대호랑은 좀 다르고. 아 오대호중에 하나인 무슨 호수 여기 엄청 큰게 있었는데, 그게 이건가? 다른건가? 모르겠다. 솔직히 지리엔 약해서 그냥 호수라는것만 안다. 실상 마음속으로는 거의 바다 취급하고 있었지만... 구글맵 돌릴때마다 도시 저 아래쪽에 파란 물이 쭉 있는데, 테두리가 안 보여서 호수라기보단 바닷가같은 느낌이었다. 하여튼 거기 걸어서 두시간이면 가겠지! 했는데 의외로 40분거리, 자전거로는 직선 16분으로 찍어줘서 놀랐다.

Spadina Avenue는 처음엔 몰랐찌만 큰 길이었다. 진짜 엄청 크다. 여긴 찻길들이 왕복 사차선이어도 다 고만고만 좁다고 느껴지는데, 와중에 진짜 큰 길이라고 느껴지는 (그래봤자 왕복 6차선, 아 트램 길 합치면 8차선) 대로가 몇 개 있다. 블루어, 영, 그리고 스파다이나(스파디나가 아니었다. 스파다이이나 같이 이에서 쪼끔 높아진다). 격자무늬로 이루어진 길들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몇 개 길들 중 하나. 그래서 이 길 따라 쭉 내려가면 호수까지도 금세 간다. 안타깝게 그 길로는 못 갔다. 무서웠기 때문에.

아, 무작정 자전거를 꺼냈고 지하실에서 만난 모니카가 헬멧을 빌려줘서 헬멧까지 썼는데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다. 바퀴도 다 펌핑했는데 왜...? 그것은 안장이 너무 높았기...때문에....... 다리가...짧았............. 손으로 조절할 수 있는 손잡이 붙은게 아니어서 렌치가 필요했는데 집에 공구상자가 없었다. 높은걸 타보는 연습 하지뭐! 했는데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안장에 올라가기도 어려웠지만, 올라가면 발이 페달에 안 닿았고 자전거를 가눌 수가 없었거든. 집 애들 다들 잘만 타던데... 다리 짧은 자의 설움이여... 옆집 애들한테 공구상자 있냐고 물어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포기.
검색해봤지만 주변에 자전거샵이 많지 않았고, 여섯시 반에는 대개 문을 닫았기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전거를 끌고 쭉 걸었다. 그러나 오토바이가게를 발견...!
샵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렌치를 빌려줄수있냐고 물어봤는데, 안장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아저씨가 친절하게 렌치로 안장을 고쳐줬다. 녹슬어서 엄청 힘들었는데, 낑낑 풀어서 안장 낮춰주고 맞나 확인해보라고 하고 다시 조여주심. 안장을 낮출수있을만큼 낮췄는데 더 낮출수 없어서 그냥 선택지가 없었다. 지나가는 아저씨 하나가 (오토바이때문에 들른것같았는데) 옆에서 같이 들여봐줌. "50 bucks"하고 손내밀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는 유쾌하게 보내줬다. 자전거 끌고 가려는데 뒷바퀴에 붙은 라이트가 이상하게 꺾였다고 불러서 고쳐줌. 으앙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서 너무 행복하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드디어 자전거를 타게 됐는데, 어... 타는순간 끾끼끼끼끼끼끽끾끾끼끼끾하는 소리가 났다........................................................
체인이 녹슬었나봐...? 바퀴만 돌아갈때는 안 나고, 페달만 밟으면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는데 기어를 바꾸니까 좀 나아졌다. 자전거 타는거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나 자전거 잘 탐... 진짜...

어, 자전거를 잘 타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준프로급으로 픽시 사고 싸이클하는 친구들한테야 댈 건 못되지만, 취미로 타는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함. 속도도 나쁘지는 않고 지구력도 좋고 오르막 내리막 코너링도 잘한다. 자전거를 가리는 편도 아니고. 거칠게 타는걸 좋아해서 오빠가 위험하다고 말릴 정도인데, 근데 그건 다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만이다.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건 진짜 못한다. 왜냐면 교통신호를 못 읽고, 거기에 움츠러들거든. 도로교통 너무 어렵다 8_8... 난 횡단보도 신호등 빨강초록불밖에 못 읽는단말야! 차도 신호는 어렵고, 거기에 좌우회전 들어가거나 교차로 신호가 들어가면 더더더더더어렵다. 진짜... 어렵다........  학교에 한번 자전거 끌고간적 있었는데, 거기가 인도가 좁아서 차도로 가야했었어서 진짜 힘들었던적이 있다. 다행히 앞에 자전거 타는 사람 있어서 그사람 등만 보고 죽어라 달림. 아무리 빈 차선이라고 해도 차도로 자전거 타는게 너무 무섭다.
그리고 여기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 진짜 많은데 자전거를 인도로 타면 안된다. 무조건 차도로 차랑 같이 가야 함(물론 가끔 예외인 구역도 있다). 다행스러운건 자전거도로가 여기저기 잘 갖춰져 있다는거고, 불행한건 그 도로가 존나 웃긴 모양으로 짜져있다는거다. 길도 교차로로 쭉쭉 뻗고 그래서 전차도 일직선으로 가로세로 다니면서 자전거도로는 진짜 꼬불꼬불 만들어져있음. 예를 들면 스파다이나같은경우 내려가는길은 자전거도로가 없고 올라오는 길만 있다. 내려갈때 자전거도로 찾아가려면 기역자로 막 꺾고꺾고꺾어가야한다. 자전거도로가 있다가 중간에 뚝 끊겨서 멘붕하고 인도로 끌고갔던 적도 있다. 한 길에 자전거도로 있는구역 ㅇ없는구역이 섞여있다. 왜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형 자전거를 탄다. 그니까 바퀴가 얇고 큰거. 보기엔 진짜 예쁘지만 나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바퀴가 두껍고 무거운 하이브리드형에 비해 충격이 흡수가 잘 안 돼서 고스란히 사람한테 전달되기 때문이다. 아빠가 도시형을 샀어서 몇번 끌고 나간 적 있는데,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엄청 흔들리고 안장으로 충격이 다 와서 엉덩이가 진짜 아팠다. 사실 투박해도 두꺼운 휠이 훨씬 안정적임. 물론 예쁘긴 엄청 이쁨. 한국은 도로가 험하고 굴곡진게 많아서 사실 도시형 자전거 타기엔 적절하지 않다. 여기는 길이 잘 짜여있고 잘 닦여있고 또 도시가 평탄하다. 산이나 둔덕? 언덕? 뭐라더라 한국지리적인 용어가 있었는데 생각이 잘 안 나. 여튼 그런게 진짜 없다. 그래서 도시형을 타도 비교적 훨씬 쉽다. 도로도 단순해서 큰 도로 교차로 말곤 한국처럼 복잡한 도로시스템도 없고. 인도 여기저기에 자전거 묶어놓는데도 되게 많다. 자전거 잘 타는 사람한텐 진짜 좋은데일텐데. 요즘들어 너무 자전거가 타고싶었다. 타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길에 자전거 셰어링 시스템이 있는데 그게 진ㅉ따 좋암보였다. 그거 빌리려고도 시도해봤지만 크레딧카드밖에 안 받아서 내 카드는 읽히질 않더라.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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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커피심부름! 어차피 아침에 한시간 일찍 도착하면 찬양팀 연습 구경하는거 말곤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에, 지지난번에 이어 커피 심부름을 다녀왔다. 왕복 30분쯤 걸리는 몇 블럭 떨어진 곳의 이탈리아식 카페. 딱히 거기가 특별하게 맛있어서라기보단 교회 근처가 죄 주거지역이라 거기가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을 때 낮은 이층 집들이 양옆으로 펼쳐진 조용한 길을 씩씩하게 산책하는건 꽤 괜찮은 기분이다. 특히 요즘같이 인도어파가 되어가고 있을때는 더더욱!
여담이지만 '인도어파'라는 단어는 볼 때마다 이상하다 인도+어+파 라고 읽어야 할 것 같아. 언어학에서 인도어족이라고 했었나, 그런 기분...

내가 여기서 살 수 있다면 어느 집이 좋을까 고민하며 고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대개는 정원을 예쁘게 가꾸고 있는데, 오늘은 매화나무를 봤어! 정말 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군자화의 매화와 똑같이 생겼는걸! 그리고 화투패의 그 꽃그림과도 닮았다. "You made it! yeahh!"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도 엿듣고, 산책 나온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생긋생긋 웃으며 인사도 하고.

오늘은 런던포그LondonFog를 마셔봤다. 차에 스팀밀크, 그리고 바닐라를 조금 넣은거래. 헤이스팅스 거리의 Cafe Artigiano에서 주문을 받는 여자분은 늘 경쾌한 말투로 노래하듯 이야기한다. Have a nice day! 하고 나오자 다른 주문을 받는 와중에도 You too, you too! 하고 목소리 높여 대답해주었다. 덕분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웠다. 좋은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 되고싶다.


요즘은 꿈을 자주 꾼다. 어젯 밤에도 그랬다. 그 전날엔 J가 나오는 꿈을 꿨다(J가 말해달라고 했는데! 다 까먹었다가 조금씩 기억을 살려봐야지). J와 썸을 타는 남자가 있었는데, 사실 양방향 썸이라기보단 남자는 J를 좋아했고 J는 남자가 탐탁찮은 쪽이었다. 사실 아쉬운건 J쪽(이라기보단 우리쪽)이었는데, 남자가 우락부락한 근육돼지체형의 조폭같은 무엇이기 때문이었다. 뒷골목을 꽉 쥐고있는 사람이었어서 잘 보여야 했다(...). 하여튼 두 사람은 그럭저럭 데이트하며 만나는 사이였다. 그러다가 어떤 일로 남자가 J에게 마음이 상하게 됐다. 사소한 계기였는데, 남자의 어떤 무례한 행동에 J가 화를 냈고, 남자 역시도 J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제까지 쭉 참아왔던 J의 냉소적이고 비협조적이고 퉁명스러운 태도를 참다참다 폭발한 거였다. 나는 시발 KㅓK 됐다 하는 기분으로 남자의 비위를 살살 맞췄다. 여자들은 원래 그래요, 괜히 새침하게 굴잖아요 사실은 속으로 미안해하고 있지만 자존심때문에 먼저 말 못하는 거예요 하고 남자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게 반쯤 성공 (여자들은 원래 속좁고 예민하게 구는 족속이므로 대인배인 내가 다 이해하고 품어줘야겠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했는데 그 타이밍에 등장한 J가 지랄하고 자빠졌다고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다 망했어 우린 시멘트에 묻힐거야...

다행히도 묻히기 전에 깼다.


어젯밤, 거의 오늘 아침에 꿨던 꿈은 훨씬 난해했다. 조프리한테 당할뻔했어! 
동양 시대극과 현대를 오갔기 때문에 진짜 조프리는 아니었고, 조프리 급의 왕세자였다. 아니 조프리보다 더한 새끼였다. 조프리는 성질은 더러워도 왜소했지만 - 딱히 비리비리하진 않았던것같은데 워낙 주변 사람들이 떡벌어졌어서 그런 인상을 주었다 - 얜 덩치도 크고 칼도 잘 썼다. 심심하면 궁인들 뿐만 아니라 당하관들도 푹푹 찌르곤 했다(고증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학창의를 입은 세자시강원의 선생님이 (고증이 맞는지는 모르겠다2) 인상을 찌푸리고 말리러 왔는데, 얼굴이 안내상이었어... 세자와 어울려다니는 망나니 하나가 - 주제에 붉은 관복을 입은걸 보면 어지간한 세도가 자제쯤 되는 것 같았다 - 잔소리가 듣기 싫다며 선생님마저 베라고 부추겼는데 오히려 그 놈을 찔러죽였다. 괜히 배알이 꼴려서 그랬는지 스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이해할 수 없는 새끼였다. 아니 이해가 되면 또라이가 아니지. 그리고 그 세자에게 찍히고 말았던 것이다. 왜죠 난 지나가는 무수리1이었던것같은데...?
갑자기 시대를 건너뛰어 현대. 엄마와 나는 단 둘이 한옥에서 살았다. 아주 넓고 큰 한옥이었다. 담 안에 각각 마루와 방을 가진 전각이 여러채였는데, 형편없이 낡았기 때문에 고급지다기보다는 허름하고 휑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나 동네에 유일한 과부댁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흔히 마을의 과부, 여자 둘이서 사는 집을 보는 시선들. 세자는 (현대로 왔으니까 세자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다른 호칭이 없으니까) 끈질기게 들러붙었고, 미루고 미루다가 '다음 주 목요일에요'를 약속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물레방앗간에서 만나는 끕의 약속 말이다. 시대배경이 그대로 과거였다면 그래도 왕세자인데 승은이나 입고 첩지라도 하나 받을건데, 현대에선 그마저도 없었다. 그런데 왜요 도대체...? 하여튼 가시방석을 삼킨 것 같은 날들이 지나고 당일 밤이 됐다. 세자가 찾아왔고,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밀회의 장소를 찾아서 헤맸다. 휑한 전각들을 몇 군데 뒤졌고, 밖은 어두컴컴하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전각에서 전각으로 건너가는 사이사이에 치맛자락이 - 이 꿈의 유일하게 좋은 점이었는데, 한복을 입고있었어! 소맷단에 색동이 대어진 노란 저고리에 바스락거리는 빨간 치마였다. 빳빳하지 않은 속치마까지! - 젖어들어갔다. 한 번 찾아냈던 곳에서는 발소리가 소란스럽자 잠에서 깬 언니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기 때문에 실패했다(언니는, 하은이언니와 X가 섞여있었는데, 다 알면서도 모른척 쫓아내는것 같았다). 그 다음에 찾아낸 곳은 엄마의 방에서 가까웠고, 차라리 기절해버렸으면 좋겠다는 기분으로 눈을 질끈 감고 거사를 치르려는 찰나 엄마가 화난 목소리를 높여 나를 불렀다. 못이기는 척 하면서 도망쳤는데 거기도 별로 유쾌한 곳은 아니었다. 아줌마 아저씨들의 패션인 등산복을 입은 외가쪽 친척들이 잔뜩 모여있었고 - 특히 이모들과 이모부들이! - 엄마가 그 중심에 앉아있었는데, 특유의 레퍼토리로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여자는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남들에게 함부로 '줘 버려서는' 안된다, 스스로의 값어치를 낮추지 말아라, 쉬운 여자가 되지 말아라, 휘둘리지도 말아라 등등등. 특히나 지금은 여자 둘이서 살고있으니까 남의 이목을 더더욱 조심해야한다고! 엄마 딸은 알아서 잘 한다니까요, 라고 말하면서도 그럴 수 없어서 좀 찔렸다. 왜냐면 지금 처신을 잘못해서 휘둘리면서 곤란해하고 있었으니까(그리고 엄마들은 특유의 감으로 딸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바깥에는 원치 않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고, 안에서는 지겨운 잔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도 친척들 앞에서라면 공개재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단원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편을 들어주고, 다른 쪽에서는 '그래도 엄마니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러는거지' 하고. 마치 의식과도 같은 일련의 과정들, 온갖 충고와 조언과 네네 잘 알겠어요 하고 안심시키는 말들이 끝났을 때는 이미 바깥이 훤하게 밝아져있었다. 비도 그쳤다. 아직 젖어있는 모래 바닥을 피해서 군데군데 깔려있는 포석들을 밟으며 통통 뛰어 내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꿈에서 깼다.

꿈의 몇 가지 재료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다음 주 목요일', 아쿠아리움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줄거리야 난해했지만 알아보기 쉬운, 몹시도 프로이트적인 상징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프로이트라면 부모로부터, 특히 엄마에게로부터 온 성적인 억압이 결국 남성혐오와 섹스에 대한 두려움의 형태로 표출된 거라고 말할 것 같다) 나는 K가 이 꿈을 재미있어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말해주지는 않을거지만.

=
(2016-01-17-23:42)
가족의 습작의 첫 글을 썼던 날의 일기라서, 그 글 찾아 올리는 김에 올려둔다. 꿈 일기를 잘 써두면 늘 재미있지. 꿈 꿨을 때는 위협적이었을정도로 적나라했는데 그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안 적나라한 표현으로 그러나 내용을 깎지 않고 적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다시 읽을 때면 재미있지만 화끈거리는 것.
그 주 목요일의 아쿠아리움 나들이는, 글쎄, 이 꿈이 적절했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벨루가와 상괭이를 봤다. 적어도 토론토에서의 아쿠아리움 나들이보다는 이 쪽이 유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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