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습작에는 후회하지 않을 일들만 적는다, 후회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고 적었던 바 있다. 최근, 바로 어제까지의 일기 역시도 그렇게 시작했다.
-- 정말 후회하지 않는가?
이제와서야 덜컥, 그 모든 것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________ 하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빈 칸에는 어떤 말을 넣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후회하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부서뜨리지 않았었다면 좋았을걸. 그때 그러지 말걸, 하는 기분이 드는가? 맞아. 하지만 그 때, 그 순간의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나? 지난 어떤 일기에 나는 그것을 "내가 나 자신일 수 있었던 순간"이라고 적었다. 맞아, 어쩌면 오빠와의 관계 중에 나는 그것이 절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S와의 관계에서도? 지난 몇 주 간의 내게 왔던 순간들이 그런 것이었을까? "하고싶은 것을 망설이지 말아요" 라는 속삭임은 너무나도 달았다. 얼마 전 R 선배는 내가 자꾸만 '무언가를 깨뜨리고 싶어하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 양육환경으로부터 왔었으리라 짐작된다고 말했다. 지난 인생을, 그러니까 내가 지금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열 다섯 살 이후로의 열 다섯 해를 되돌아봤을 때 나는 늘 내가 하고싶은 것을 끝까지 밀어붙여본 적 없는 상태에 잠식당해 있었다. 내가 품은 욕망들은 대개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었고, 내가 감히 그런 것들을 욕망할 자격이 있는지 늘 허락을 구하려고 했으며, 그 욕망을 표현했을 때 거절당할까 두려웠다. 나는 늘 내 욕망을 **선언**하고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애써야만 했으며, 내 연애들은 내 욕망 - '정체성' - 과 길항해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러던 와중 어떤 사람들이 - 내 욕망을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나를 욕망하는 방식으로 내게도 그를 욕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듯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순간 나는 늘 무너지는 마음으로 튕겨나갔다. 왜냐면 그건 너무- 너무- 자유로웠으니까. 애인은 내가 Y와 있을 때 그가 주는 "짜릿함"에 몸을 맡겼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기실 내가 느꼈던 것은 육체적인 짜릿함은 아니었다. 나 자신을 치열하게 증명하지 않아도 나를 긍정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경험은, 내게는 너무나도 드문 것이었단 말이야. 폴리아모리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 이후, 독점적 연애 중 내가 저울에 올렸던 것은 내 애인과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내 애인과 나 자신, 애인을 사랑하기 위해 나를 죽이고 싶던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NX는 이번 이야기를 전해듣고 "단원은 지난 시간에서 배운 것이 없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상 NX야말로, 당사자인 S를 제외하면 가장 내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오빠는 나를 용서했지만(그래서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있었지만) NX의 일부는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했거든.
나야말로 그것이 무섭다. 나는 정말 배우는 것이 없는 사람인가?
어떤 순서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감히 두 사람의 이름을 내 연애의 역사에 넣어도 된다면:
( ㄱㅅㅇ : ㄷ ) - ( 오빠 : B ) - ( S : Y )
대개 전자는 헤테로섹슈얼-모노아모리였으며, 연애에 충실했고, 내게 주는 것이 많았으며, 그렇게 내게 안정감을 주었지만 반대로 원하는 것도 많았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늘 미지근한 물에 턱끝까지 잠겨있는 압박감을 느꼈다. 한편 후자는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같은 것을 보여주었지만, 그만큼 쉽게 나를 비난했고 나를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며 무례하게 떠났다. (그리고 모두 예술-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낄낄 웃었다) 전자에서 후자로의 관계로 이행할 때, 나는 늘 - 자각하지 못했다고, 혹은 아무리 절실했다고 하더라도 - 관계에서의 신뢰를 깨뜨렸다. 모노아모리 식으로 납작하게 말하면 바람을 피웠다든가, 환승이별이라고 비난받을만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정말 배우는 것이 없나?
조금은 나아졌다. 월요일 밤, 나를 멈췄던 것은 무엇일까. S의 마음이었을까? 혹은 "약속을 어겼다"는 당위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L의 이슈가 있었을 때 NX는 내가 평생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욕망하며 허덕일거라고 했다. 매 순간 나를 움직였던 짜릿함은 거기에서 왔다. 이번에 조금 더 잘 멈출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고, 지금 이 순간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또다시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S의 마음에서 눈을 돌리고 내가 찾았던 것은 Y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인정욕구였다. 그리고 그간 (많은 부분 S 덕분에) 내 마음이 조금은 더 건강해졌으므로 조금 덜 가서 멈출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끈질긴 인정투쟁을 내려놓지 못하는 한, 나는 영영 이런 순간들에 튕겨나가버리고 말까?
이쯤 이야기를 듣고 NX는 내가 "뭔가를 배웠다"고 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후회하지 않는가? 모르겠다. '그 때로 다시 간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고 말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다. 다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절실하게 바란다. 신뢰를 깨뜨리는 방식으로 나를 내던지지 않더라도 나를 증명하고, 내 허덕이는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끔찍하리만치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이제는 후회의 습작이라는 이름 아래 일기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기장의 이름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신뢰의 습작>, 내가 다른 사람과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고도 나를 잘 쌓아가기를 바라며, 내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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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욕망의 실험 (미완성)
- 애인과 다수 연애를 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독점적-배타적 연애관에서 살짝 비껴나가 있었으므로 이미 다자연애의 스펙트럼에 놓여있었고, 그래서 애인은 이를 다자연애를 합의한 것이 아니라 다수연애를 합의했다고 명명했다.
- 나는 무엇을 하고싶을까?
- 이제까지 나는 가능한 한 멀리까지 뻗어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어차피 내 한 쪽은 애인에게 붙들려 있었으므로, 한쪽엔 애인의 손을 꽉 잡고 있는 상태에서 반대쪽으로 손끝을 쭉 뻗어내어 가능한 한 멀리 닿고 싶었다. 나는 종종 "저울에 올린다"는 표현을 썼는데, 내 저울은 그 무게가 어떻든 이미 애인의 마음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투정부리는 마음으로 반대쪽에 이것저것을 올려놓았다. 내 괴로움, 무엇을 하고싶은 마음, 이런저런 것들을 잔뜩. 그런데 막상 그 고정쇠를 풀어버리고 "정말로" 저울 양쪽의 무게를 재야 하는 상황이 되자 덜컥 무서워졌다. 내가 너무 많이 올려놓은 나머지 반대쪽에 놓인 애인의 마음과 괴로움이 튕겨나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무엇을 올리거나 덜어내며 우리 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너무 많은 것들을 와르르 올려버릴 수는 없는데. 지금 내 손에 쥔 것이 정말 무게를 달아야 할 것인가?
- 그러니 나는 이제야, 애인을 잃어버릴 것이 무서워진 것이다.
-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 무엇을 더 하고싶어진다기보다는, 하지 못하는 것이 없어져서 좋았다. 종종 너무너무 좋아서, 눈 앞의 사람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벅차오를 때는 상대방도 그것을 원할까? 다음에 애인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 마음을 억누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닿고 싶을 때는 닿을 수 있다! 이제 누군가를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되고 때로 입 맞추고 싶을 때는 입 맞출 수 있다. "상대방과 무엇을 하고 싶을 때는, 오직 우리 두 사람 사이의 합의만이 중요하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회적인 통념이나 관습적인 관계 양상을 고려하지 않고. 선을 흐리는 것, 경계를 밟는 것, 그래서 "자유로워"지는 것 - 혹은 그렇다고 착각하는 - 것.
- 그래서 그렇게 자유로워 졌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싶을까?
- 자유롭다는 것, 다시 말해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실상 괴로운 일이다. 무엇이건 다시 검토해야 하고, 솔직하게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좋은 핑계가 됐다. 너랑 연애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됐거든. "애인과 합의가 되지 않았다"도 돌려 말하기 좋은 멘트였다. 너랑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명확하게 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 그러나 타인의 욕망에 응하거나 거절하기 이전에, 나는 내 욕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 애인은 "내 애인은 왜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고싶을까?" 하고 말했다. 또 "나도 새로운 사람과의 섹스가 주는 짜릿함을 알아요(그래서 단원이 왜 그걸 하고싶어하는지 이해해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섹스가 하고싶을까?
- 나는 왜 더 많은 사람들과 섹스가 하고싶을까?
- 한때는 누군가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방식으로 내 자존감을 채우고 싶어서 허덕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때때로 여전히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주는 간질거리는 즐거움이 좋아서 틴더를 다시 깔아볼까 하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나는 이전만큼 허덕이지 않는다.
- 한편 섹스(연애)는
- 끝맺지 못한 글이지만 공개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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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연애를 하기로 합의했다.
어제 애인은 '범위를 넓혀보자'고 했다. 조금의 진척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애인과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야기할 수록 기본적으로 연애를 이해하는 우리의 문법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애인에게 가해지는 다자연애라는 부담이 더더욱 내 언어를 오독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에 지쳤다. 애인은 모노아모리 치곤 훌륭하게 폴리아모리의 매커니즘을 이해"해주"었지만, 우리의 언어 사이에 놓인 크레바스를 의식하며 조심조심 다리를 놓는 것에. 우리의 논의가 동등한 축에 놓여있지 않고, "기본값"인 모노아모리에서 "변수"인 폴리아모리를 논의하며 애인의 허락을 구하는 것에. 애인은 피해자인 마냥 나를 성토하고 나는 가해자인 양 쩔쩔매며 양해를 구하는 것에.
내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팬섹슈얼에서 시작해 자신의 성적 취향을 선택하고, 모든 연애는 폴리아모리에서 시작해 (원한다면) 독점적 연애를 합의해가는 과정이어야 마땅하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설득해야한다"는 검블유의 말을 빌려, 모노아모리로/단수연애로 우리 관계를 제한하고 싶은 사람이 설득했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애인에게는 "모노아모리가 통상적, 나는 다른 사람은 하지 않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훌륭한 무기가 있었다. 애인과 나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설득해야 하며, 나의 고통은 애인의 고통과 같은 무게값을 지녀야 했지만 우리의 논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궁지에 몰린듯한 기분으로 선택했다.
결국 이런 선택을 하게 했다는 점으로 애인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내가 어쩔 수 없듯 애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 다만 같은 결론이더라도, 좀더 침착하게 충분히 논의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과정 끝에 낼 수는 없었는가. 그렇지 못하도록 나를 몰아붙이고 기어이 소진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애인이 밉다. 왜냐면
우리는 언젠가 헤어지고 말 테니까.
오빠와 헤어지고 난 이후, 나는 다자연애자가 아닌 사람과는 연애하지 않겠다는 굳은 원칙을 세웠다. 애인과의 관계도 그런 줄로 알았다. 애인은 사기결혼 당한 기분이겠다, 며 농담을 했다. 서로간에 다소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연애를 '시작해서는 안 됐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둘 다 어떤 일일 줄 몰랐던 게지. 다자연애라는게 애인에게 이토록이나 큰 마음의 장애물이 될 줄, 그것을 건너가는 과정이 이토록이나 어려울 줄을.
그래도 우리는 논의를 꽤 잘해왔고, 우리 사이의 간격을 조금은 좁혔다. 다만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는 조밀한 평행선을 찾아가는 과정이 내게는 너무 지난했고, 연애에서의 대화와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특기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에 지쳐서 그만 내가 포기해버리고 만 것이다.
조금 더 논의해 볼 수는 없었나? 최소한 (내가 아는 어떤 커플들처럼) 실험해 볼 수는 없었나? 정말 이 간격이 -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나?
"원칙대로라면" 나는 다자연애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된 순간 애인과 헤어져야 마땅하다. 당위적 사고로 움직이는 나의 매커니즘은 그러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쉽겠어. 다정은 병이고 나는 모질지 못하게 사랑에 사람에 지고 만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다자연애를 논의하지 않을 것이고, 애인은 실체 없는 불안을 가지지 않을 것이며, 나는 더 이상 애인과 농담으로라도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발에 새긴 타투를 볼 때마다 내 "원칙"을 떠올릴 것이고, 내가 스스로의 원칙을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 또는 내가 불편하지는 않고 몸에 그럭저럭 맞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내 것이 아닌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에 - 가끔 괴로울 것이며,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할 때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다음 연애는 반드시 다자연애자와 할 거야. 혹은 연애를 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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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의 엠바고를 무엇때문에 걸었더라? 기억나지도 않는 이유가 몹시 무의미해보이니까 그만둔다. 지난 한 달간 나는 무엇을 배웠더라? 나와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기 위해 - 여전히 좋아한다는 말은 오히려 마음의 짐이 될테고, 보고싶다는 말은 진절머리날테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부채감이 될 테니까 - 무진장 애를 썼다. 거의 성공할 뻔 했다. 한 달은 너무 길었고 막바지쯤 나는 몇 번씩 무너졌고 말을 질질 흘렸고 그래도, 그래도 이쯤이면 점잖지 않은가.
두 종류의 일기가 있다. 수신인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과, 읽기를 바라지 않는 글. 수신인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일기들이 있었다. 읽어주기를 바랐으므로 당장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되었으므로, 사실 나는 내가 뭘 썼는지도 모르겠고 왜 그런 글들을 썼는지도 모르겠으므로 이제야 엠바고를 풀어둔다. 그러므로 지난 일기들은 어떠한 청구서도 아니고, 앞으로 쓸 일기들에 혹시나 지난 연애나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대도, 나는 아무것도 받아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밝혀둔다. 나와 이년 반을 만났던 애인은 단 한 번도 내게 똑바로 어떤 이유때문에 헤어지자고 말한 적 없다. 5월 1일, B는 오빠와의 일을 놓고 내 입에서 "지응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만나기 어렵다"는 말을 끌어낸 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얼버무렸고 그로부터 3일 후엔 '사실 너와의 연애가 내게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다'고 말했다. 생각이 정리되면 연락할테니, 연락도 하지 말고 찾아오지도 말라고. 그리고는 한 달이 지나서 한다는 이야기가, 기껏, "부채감을 씌워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서 "도망쳐 나온" 결정이 옳다고. 나는 아직도 이 연애가 왜 끝났는지 모르겠다. 불안형의 연애스타일과 회피형의 연애 스타일이 달랐다는 것은 만난 지 일 년이 안 돼서 드러났고, 이미 나는 3월 중순 그 문제로 그만 만나자고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괴로웠다면 그냥 그때 끝냈으면 되었을 것을. 헤어지자고 하기 3일 전 지응은 내가 연애에서 바라는 것이 너무 많으니 그 선을 넘어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 모든 문제 해결의 과정들은 죄다 무의미한 일이었단 말이야? 그렇다면 오빠의 문제는 핑계였을까? 마지막으로 남길 이야기가 "부채감"이라는 것도 우습지. 한 쪽이 부채감에 연애를 지속했다면 반대쪽에서는 그걸 몰랐을까?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끝내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지응으로부터 받는 것들이 "어버이날 카네이션"처럼 느껴졌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안좋은 것들을 끝없이 말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단말인가? 어느 연애건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뒤섞여 있는데.
정말이지 헤어진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애는 언젠가 쫑나. 지금이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그 과정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그냥 납득해 버린 것도 같고 또 납득하지 않을 방법이 없고
그래서 나는 좋은 것들만 생각하는 일기를 쓰려고 한 달간 열심히 생각했다. 둘 중 아무도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고, 아무도 서로를 탓하지 않을 수 있는 설명을 찾아냈고 이년 반의 연애가 내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쓰는 것이 또다시 무의미하게 느껴졌으므로, 몇 번을 썼다가도 그냥 지워 버렸다. 어차피 읽어야 할 사람이 읽지 않을 일기에 그런 말들을 써봤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야? 그리고 나는 이제 그것이 읽혀지기를 바라는 일기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데.
좋은 연애였는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로 나는 자존감을 든다. 연애가 끝난 후 어땠는가. 나는 B가 마음의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던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아마 내가 지금 이쯤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간 조금이나마 더 건강한 마음상태를 회복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나는 이것이 B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다.
고작 연애하다 끝났다고 이렇게 없는 사람처럼, 모르는 사람처럼 굴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웃긴 촌극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어느 누구보다도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했던 사이인데, 앞으로 예전같지는 않더라도 서로 안부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우습게 굴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내가 누군가의 삶에서 완전히 삭제되어야 할 만큼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던걸까?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원래 연애란게 다 이렇게나 고약한거라면 나는 앞으로는 별로 연애하고 싶은 기분이 안 되기는 하는데, 어쨌거나 다음 번에 연애라는 걸 하게 된다면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어떤 두 세계가 만나서 서로에게 스며들어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그것이 대단한 일인 만큼이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지는 과정 역시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에이넉스와 싸웠을 때 에이넉스가 썼던 일기를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화가 나고, 여전히 누가 얼마만큼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보고싶고 같이 공부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냥 보자고 했다고. 어쩌면 그것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문제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볼 때에야 해결할 수 있다. 다시 연애하자는 이야기 아니고, 약속한 대로 가족으로 남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나는 내가 사랑했고 내가 만나왔던 사람과 이 관계를 끝내고 싶다. 이렇게 내 머릿속에 하나 만들어놓은 누군가와 섀도우복싱 하면서 울 일이 아니라. 그것이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한 달이었다. 내가 누구와 헤어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혼자서 헤어져야 했던 것. 나한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지응의 SNS에서 지응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나와의 관계를 무엇이라고 정리하고 있는지 힌트를 얻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트위터에 마음 누르는 거 하나가 다 내 얘기 같아서 혼자서 트위터 한 줄에 한 번씩 다시 차였다. 그리고 그런 내가 조금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서 모든 SNS에 뮤트를 걸었다.
원래는 B의 트위터를 블언블 할 계획이었다. 당장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게 '너랑 영영 안 보겠다'는 신호로 잘못 받아들여질까봐,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를 일기에 쓰고 엠바고를 푼 다음이어야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끊어내는 것이 제일 나빠. 왜 블언블하고 싶었냐면, 나는 참고있지만 여전히 징징대고 싶고, 징징댈 수 있는건 트위터밖에 없고, 내가 징징대는 걸 보면 B는 틀림없이 또다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부채감을 느낄 테니까. 다른 말로 하면, 이제는 '좋은 것은 보여주고 싶지만 나쁜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이가 된 것이다. 그동안 내가 하고싶던 이야기는 정말로 사소한 것들이었다. 나는 밥을 잘 먹고 있고, 여전히 과제가 많고, 마감을 밀리고 있지만 어렵지 않고, 그러니까 잘 지내고 있다고 몹시 신난다고. 그래서 평소에 쓰지 않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그렇게나 많이 썼다. 왜냐면 그건 누가 읽었는지 확인이 되니까. 이 메세지가 수신인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반대로 내가 묻고싶었던 것도 사실은 그저그런 것들이었다. 산방 프로젝트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셰어하우스 촬영은 요즘도 잘 가고 있는지, 그래서 여행 다녀왔으니 편도는 괜찮은지, 밥은 건강하게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그런 것들. 이 시시한 것들을 들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다.
라라랜드가 싫다. 양쪽 모두에게 황폐하게 남은 연애와, 한쪽에게는 황폐했지만 다른 쪽에게는 그래 사랑했다 즐거웠다 행복해라, 하고 남는 연애 둘 중 어느 것이 더 우스울까? 내가 그 연애를 이렇게 말해도 될까? 나는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빠와 헤어질 때 오빠에게 약속했던 것을, 나는 오빠를 만나지 않는 몇 년간 종종 생각했다. 오빠는 여전히 내게 중요한 사람일 것이라고 했던. 아마도 나는 그것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이 연애에도 내가 같은 약속을 묶어놓아도 될까? 그것이 또 다른 부채감이 되지는 않을까?
며칠 전에는, 이제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므로, 그냥 얼굴 한 번 보고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어때야했는가 앞으로는 무엇을 할것인가를 따지지 말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나 주고받다가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나는 이제 내가 B와 어떻게 키스했었는지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와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서글펐다.
점잖게 정리하는 일기를 쓰려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건 draft인데, 앞으로도 완고를 못 낼지도 몰라. 애초에 관계의 문제인데 혼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한 달간 나는 잘 연습했다니까. 이제는 하고싶은 말이 없다. 하고싶은 말은 직접 해야하고, 반대로 수신인에게 직접 할 수 없는 말은 하고싶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싶었던 말들을 다 죽이고 버렸다. 여전히 종종 길거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고싶지만 예전만큼 일기를 오래오래 쓰지는 않는다. 그러니 엠바고를 풀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그걸 재봐야 소용 없지, 왜냐면 아무래도 B는 나를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기로 생각한 것 같았고, 아마도 이런 일기도 읽지 않을 것이므로, 여기에다 'B를 위해서' 'B를 생각하며' 'B가 더이상 부채감을 갖지 않길 바라며' 무엇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말이야.
앞으로도 무슨 이야기가 하고싶어진다면 그건 B에게가 아니라, 드라마를 쓸 미래의 나를 위해서일 것이다. 인생에서 쓰레기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은 드라마 작가의 특권이라고 했다. 이 모든 쓰레기같은 일기들도 언젠가는 다른 무엇의 재료가 될 것이다. 이것은 18년 6월 10일 오후 4시 17분의 쓰레기 조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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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의 습작, 다시.
후회의 습작
2018년 5월 1일 화요일
실비아가 집을 비운 사이 필립은 올리버와 섹스를 하고 죽을만큼 괴로워한다. 실비아는 올리버에게, "당신을 용서했어요"라고 말하고 떠난다. 올리버는 필립 앞에서 무릎을 꿇지만 필립은 끝내 도망친다. 자기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어려웠겠지만, 실비아를 배신했다는 죄책감도 필립의 목을 졸랐을 것이다. 바보같은 사람. 바보같은 필립. 필립은 정말 멍청이다.
맞아, 잘못됐지. 게이들의 위장결혼과 관련해 워마드에서 공격적으로 나왔을 때 ㄱ선배와 이 얘기로 날카롭게 다툰 적 있었다. ㄱ선배는 프라이드를 본 직후였고 가엾은 필립의 편을 들기 위해 열심이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같은데) 아니, 그러니까 필립이 용서받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걔는 그래도 진심으로 노력했잖아. 실비아와 결혼하고도 실비아에게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했고 - 실패했지만. 필립이 실비아를 배신했기 때문에 실패였다는게 아니라, 자기 안에 황무지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바로 곁에 누운 사람에게도 내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실패했다 - 올리버와 섹스하고도 끝끝내 무지무지 괴로워했잖아.
그러니까 필립은 얼마나 괴로워해야할까?
얼마나 괴로워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필립은 영영 용서받을 수 없을까? 만약 누군가가 필립을 용서할 수 있다면 그건 누굴까?
조금 더 반듯한 시작이었으면 좋았을것이다. 예를 들면 필립이, 나 동성애자인것같아, 하고 실비아에에 고백하고, 실비아의 동의를 얻어서 그녀와 이혼하고 (혹은 다자연애를 이야기하고) 올리버를 만났더라면, 일에 순서가 있다면 그런것이겠다. 하지만 때때로 그게 어려울 때가 있다. 필립은 죽어도 끝내 못 그럴 사람이었다. 그 멍청한 새끼는 자기가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해서 자기 부인을 외롭게 만들었고 그 부인이 남자를 데려올때까지도 외면하다가, 자기한테 진실을 인정하고 마주보라고 요구하는 사람을 강간하고 결국 그 모든 관계가 파탄난 다음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 한개를 품에 넣고 제발로 동성애 교정치료 센터에 들어간다니까. 거기서는 온갖 게이 포르노를 보여주고, 십 분간, 그리고 주사를 놓아 억지로 토하게 하고, 또 게이 포르노를 십 분간 보고, 또 토하고, 게이 포르노와 올리버의 사진을 동시에 보고, 또 토하고.
그럼 그렇게 "반듯하게" 시작할 수 없었다면 필립이 올리버를 만나지 말았어야했나?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감히 말하는데 그 삶이 필립에게 좀더 비참한 것은 아닌가. 실비아에게도. 그냥 자기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비참해진다.
그러니까 필립이 어땠으면 좋았을까? 필립이 얼마만큼 괴로워하면 될까? 물론 올리버와 필립의 만남은 그들이 짊어져야 할 주홍글씨지만, 그 글씨에 어디까지 짓눌려야 할까? 영영 그래야한다는건 필립에게 너무 가혹하다.
하지만 필립을 너무 쉽게 용서해서도 안 돼.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비아는 필립을 용서할 수 있었지만 필립은 스스로를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마땅히 그래야 옳다. 나는 필립을 용서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을 그렇게 쉽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 나는,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옳다. 필립을 가엾어할 순 있지만 나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면 안 되지.
오빠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오빠한테 어디까지 말했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왜냐면 나도 이 시작이 너무 괴로웠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내 가장 깊은 곳에 묻어뒀으니까. 크리스마스 파티때 소피와 해원과 키스했어. 오빠도 그건 알고 있을거다. 그냥 그 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 오빠가 어디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내가 어디까지 어떻게 말했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걸 따진다고 한들 무엇이 중요하겠어. 그런건 아주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여기에 관해서는 장담할 수 있다. 그건 이제 사소한 문제야. 내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오빠도 그럴거라는 얘기지. 그럴것이다. 4년간 삶을 섞은 사람이라면 그쯤은 말할 수 있다. 나는 오빠를 잘 안다. 우리는 그만큼 사랑했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너무 절실했다. 다자연애의 화두를 꺼낸지는 오래 됐지만 오빠와의 논의엔 진척이 없었고, 그러니까 있긴 했는데 내 절실함에 비해서는 너무나 더뎠고, 그렇다고 오빠랑 헤어질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증명해야만했다. 그러니까 정말 미치겠는거야. 필립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어렴풋히 여기 뭔가가 있는것같은데, 내가 이걸 바라는것같은데, 그게 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내가 그걸 정말로 바라는지도 모르겠는거야. 나는 팬섹슈얼이라는 단어를 찾았고, 다자연애가 나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그게 자꾸 생각에서만 머물러서,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일까? 사실 아니면 어떡해? 이게 맞아? 아니야? 이게 나야? 정말 이거야? 누가 가르쳐주면 좋겠어. 그러나 가르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러니 나는 내 삶에서 그걸 증명했어야 하는데, 아 나는 여자를 한 번도 좋아해본적 없는데 내가 바이인가? 한참 고민하다가 꿈에서 여자애가 나오고 나서야 - 이런 건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일인데도 - 그래, 맞아 난 바이인것같아, 하고 인정하게 된 것처럼 뭔가가 너무 필요했는데. 내가 내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끊임없이 괴로웠고 당장이라도 그걸 선언하고 싶었다. 나는 오빠를 아주 사랑하지만, 미안해, 나를 죽일만큼 사랑할수는 없었어.
그리고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나를 사랑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너무 좋았어. 그것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은 너무나 희미하고 사소한 문제가 됐고 그 순간 나는 내 가장 깊은곳에 닿을 수 있었다.
그 날이 나를 바꿔놓았고 그 순간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조금 다른 순서 다른 방식이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어?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과 일이고, 이미 생겨버린 기억과 감정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적어도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래야만 한다.
나만의 규칙이 있다고 트위터에 썼었다. 이 날 이후로 그랬다. 어쩌다 섹스할 분위기가 됐을 때는 하기 전에 꼭 물어볼 것. '너 후회하지 않아?' 왜냐면 우리는 무엇이건 후회하지 않아야하고, 그러니까 후회할 짓이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지.
오빠는 이해할것이다. 왜냐면, 모양새는 달라도, 우리는 같은 것을 겪었으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오빠는 그걸 나한테 제대로 말할만큼은 용감했다. 작년 이맘때쯤 오빠는 얘기했다. 사실 그건 다자연애가 아니었대. 오빠는 나랑 헤어졌다는식으로 이야기했고, 그래서 오빠의 여자친구는 우리의 연애나 논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그래서 그건 바람이었다고.
이 말을 듣는 순간 납득할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미웠어도 잠수이별은 너무하잖아, 적어도 그정도의 예의는 지켜야 하잖아,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랬다면 오빠가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이해가 됐다. 그냥 그럴 수 있지. 그랬을만하지. 다자연애에 대해서 기껏 합의를 이뤄놓고도 상대방에게 결국 그 얘기를 하지 못했던것도 이해할 수 있었고 특히나 '바람'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오빠에게 그게 어떤 무게였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절실했던 것처럼 오빠도 절실했을것이다. 무엇이건.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던 일들이었다.
그러니 나는 오빠가 죄책감을 오래 가지고 있지 않기를 바랐다. 서로 한방씩 먹였으니까 비긴 거라고 칠까? 그런 기분은 아니다. 내가 먼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나는 오빠를 납득했을거야. 하지만 내가 그랬기 때문에 오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맞다. 여기에서 용서한다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내가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 어쨌든 우리 사이에도 원칙이 있었고, 내가 먼저 무엇을 어겼건과 상관 없이 오빠도 그것을 어겼으므로 - 나는 오빠를 용서한다. 실비아가 올리버에게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듯, 올리버가 필립에게 널 용서해, 하고 말하듯.
왜냐면 나는 오빠를 사랑하니까. 사랑했고 사랑한다. 그 앞에서는 많은 것들이 사소한 문제가 된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을 지켜봤던 사람들이라면, 지응의 말을 빌려, "단원은 형과 최대한 이야기를 잘 하려고 정말 인생을 걸고 노력했고,"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다시 감히 말할 수 있다면 오빠 역시 그럴것이다. 오빠는 나를 사랑하고/했고, 내가 오빠를 사랑한다는/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내게 오빠가 괜찮은만큼 오빠도 내가 괜찮을 것이다.
실제로 오빠는 모두를 용서한다고 했다. 용서라고 했나? 오빠는 모두를 그리워한다. 정말로.
남은 것은 필립이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 뿐이다.
나는 오빠를 쉽게 용서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을 쉽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 오빠도, 나를 쉽게 용서했지만 - 우리의 그 모든 과정들이 결코 쉬웠던 건 아니지만 - 자기자신을 용서하기는 어려웠을/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결국엔 그래야만 한다.
"원칙"은 중요하다. 중요하지. 원칙을 어겼다는 것, 순서를 뒤집었다는 것이 나를 얼마나 괴롭게 만들었는지. 그것은 적어도 내가 지응을 계속 만나는 동안엔 내 가슴팍에 붙어있을 큼직한 주홍글씨다(우리가 헤어진다고해서 그게 없어질까? 안보이는 척 잊어버릴수는 있지만). 이 주홍글씨가 무거워서, 벅찬 순간이 지나고 우리는 침대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지응을 처음 만났을 때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얼버무리곤 한다. 이 까슬함은 나를 오래 따라다닐것이다. 그것이 언젠가는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예감한 적 있다. 그 순간이 지금일까?
주홍글씨의 무게에 짓눌려 죽어간다면 우리는 만날 수 없다. 계속 만나려거든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 둘 중 하나야. 마음 한구석에 황무지를 놓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
이것이 내게 조금 더 쉬울 수 있는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당사자기이 때문이겠지. 나는 오빠를 크게 배신했지만, 오빠와 오랜 시간을 만났고 오빠와 많이 사랑했다. 최대한의 노력을 들였다는 것만이 내 면죄부가 되어주겠지. 지응에게는 이럴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응이 견뎌야 할 몫이다. 계속 사랑하려거든, 계속 살아가려거든.
올리버는 말한다. "실비아는 이해할거예요." 그러니 필립, 죄책감에 짓눌리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당신 스스로의 진실함을 직면하라고. 이 말이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됐다. 그렇다고 올리버가 못된 사람은 아니야. 올리버는 적어도 어떤 지점에 있어서는 실비아에게 필립보다도 훨씬 좋은 친구였고, 진심으로 실비아를 사랑했다. 또 조금 뻔뻔하고 귀엽다. "배신, 내 안에 배신이 있어! 상처주고, 상처받은!" 그러면서도 필립을 놓고 바람을 또 엄청나게 피우고, 그래놓고 필립, 나 너 정말 사랑해. 이거 진심이고 이거 정말 사랑이야.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 나 혼자 두지 마. 하고 애원할 줄도 안다.
물론 항상 모든 것들이 좋은 결론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때로 함께 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기도 하다. 2017년의 세 사람은 즐거웠지만, 58년의 세 사람은 결국 서로를 떠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단원은 항상 애인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을 내어달라고 하고, 바닥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그렇게 그들의 삶을 뒤흔들고, 때때로는 "인생을 걸고" 무언가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아주 열심이었고 진심이었다. 힘들어도 먼저 도망친 적 없다. 그래서 반대로 애인들이 나로부터 도망치게 됐지만.
새벽에 지응은 "여전히 나는 단원을 정말로 좋아하고, 우리 같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해." 하고 썼다. 나는 이 마음에 기대 조심스레 이 일기를 썼다. 황무지를 놓고서는 사랑할 수 없어. 그러니 우리는 선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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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의 습작 21
- 2017년 4월 5일 수요일
B는 최근 구여친과 연락이 닿았다. 어느정도 구여친이냐면, 그러니까 아마도 대학 들어와서 두 번째로 사귄 여자친구니까 12년쯤 만났었을까. 아니면 13년쯤. 오늘은 회기역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었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나는 안암에서의 저녁 약속을 너무 늦지 않게 끝내고 집으로 가려던 차였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B에게서 카톡이 왔다. '올래?'
사실 나는 좀 신났다. 보통 나는 애인이 생기면 친한 친구에게, 술모임에, 학회나 단체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많이 인사시키는 편이지만 B는 그러한 타입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B에게서 이야기를 자주 듣는 친한 친구들 몇 명을 만나보고 싶어서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여러 번 졸랐지만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었다. 그러던 B에게서... 친구 만나는 자리에 오겠냐는 이야기를 듣다니... ((감격)) 게다가! 그냥 친구도 아니고 구여친! 현애인의 구애인을 만나는 자리! (이유없이 신남)
현애인의 구애인 만나는 것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서... 너무 신나고...? 어떤 기분일지 잘 모르겠고... 구남친의 현여친을 만난 적은 있다. 어쩌다 수업 같이 듣고 (인생 첫 F 받은 타전공 수업) 말 트고 페친하고 친구되고... 앗 그분의 입장에선 내가 현남친의 구여친이었겠군! 여하간 그래서 너무 신났다 카페에서 만나자마자 휙 화장실 다녀올게요! 하면 너무 예의없어보일까봐 화장실부터 가고 립스틱도 고쳤는데 그랬는데 그런데 그 사이에 가셨다고... '말은 괜찮다고 해도 그분이(=내가) 불편하실 것 같다'고 서둘러 자리를 뜨셨다고 했다. 아니... 이런 것 불편해하지 않는... 진짜... 사실 좀 신났는데... 물어보고 싶은 거 넘 많았는데... 여하간 B를 통해 담번에는 셋이 뵈어요! 하고 잘 이야기 했다. 후후 정말로 그런 자리 있을 수 있었으면.
- 보편적으로는 이런 자리를 불편해 할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데. 사실 이건 다자연애를 선언하기 전부터 그랬었다. 애인들의 전 연애 이야기는 늘 궁금하고, 그들이 불편해 하지 않는 선까지는 꼬치꼬치 캐묻고 재미있게 듣는다. 그들이 전 애인들을 만나러 가더라도 신경 쓰이거나 하지 않고... 하지만 정말로 만나더라도 불편하지 않을까? 그것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사실 불편할 것 같아서가 아니고, 막상 그런 자리가 있을 때 그것이 어떤 상황이 될지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 나는 애인의 친구를 만나서 인사하는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 그럴 때 내 마음에 불쑥 어떤 생각 어떤 기분이 끼어들지는 나 자신조차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러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감히 어떤 것도 장담할수는 없으니까.
그런 건 연기같은거야.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머릿속으로 짐작하거나 계산하는 것은 결국 무용해진다. 직접 시도해 볼 때, 연기에 몸을 던질 때에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 그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연기라고. 연애, 관계, 공동체, 사람은 전부 다 그런 것들일 것이다.
- 그리고 이 연장선에서 어서 빨리 B에게 새로운 '연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반대로 내게도, 굳이 연애라고 이름붙이지는 않아도 좋으니, 어쨌건 조금 더 비중있는 관계가 - 하지만 실제로 관계에서 연애와 연애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면, 무엇을 '연애'로 명명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도 알 수가 없다. 명명에는 힘이 있다. 이 고민은 그런 관계들을 구체적으로 맞닥뜨린 다음에야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생겼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로맨틱함과 에로틱함을 양쪽 다 충족시킬 수 있는 관계 말이야.
다자연애가 꼭 다수연애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우리는 서로만을 애인으로 명명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충분히 다자연애이다. 하지만 이 단수의 연애가 다수의 연애가 될 때, 상대방에게 나만큼이나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사람이 생길 때, 우리의 마음에는 무엇이 생겨날까. 우리는 정말로 질투하지 않는 사람일까? 혹은 질투하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일까? 그리고 그 관계들 가운데서 마음과 몸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일까? 한 사람을 충분히 존중하며,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쏟아줄 수 있는 사람일까? 어쩌면 그렇지 못 할 지도 몰라. 하지만 그럴 때, 우리의 불균형을 들여다보고 고민하고 인정하고 털어놓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일까? 균형을 찾는 연습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일까? 우리의 리듬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러기 위해 어떠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믿는다, 고 썼다가 정정한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므로. 다만 이것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요청'되는 것이다. 또다시 포-즈의 문제.
- 그러므로 더 많은 실험들을 해보고 싶다. 내가,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다시, 연기와도 같은 것.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교수님은 말버릇처럼 매번 물으셨다. 그러니 더 시도해보아야 한다고, 끝까지 밀어붙여보아야 한다고. 이제야 그런 말들이 내 몸 속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막상 그것이 닥쳐 왔을 때 내가 무엇을 느낄지, 무엇을 볼지 무엇을 들을지 그리고 무엇을 말할지,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야. 궁금하지 않아?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는 끔찍하게도 궁금해.
- 솔직히 고백하는데 립스틱 다시 발랐던 것은 잘보이고 싶어서보다는 어쨌건 애인의 과거의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였다. 일종의 견제. 인정합니다. 애인의 과거의 사람 만나는 것 자체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데, 다만 구여친보다는 내가 더 예쁘고 싶고... 오늘의 차림새가 조금만 더 떨어졌더라면 선뜻 만나러 가겠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막상 만났는데 구여친이 나보다 훠얼씬 예쁜 사람이었으면 조금 슬퍼졌을 것이고 그만큼은 아니면 조금 기분좋아졌을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과 나를 비교했을 거라는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애인에게 누군가가 생긴다면, 연애대상으로서 그 상대방과 나를 반드시 비교하겠지. 그리고 그 좋지 못한 척도의 첫 번째는 외모가 될 것이고. 이것은 다자연애의 문제보다는 자존감의 문제이다. 그러니 좋은 다자연애를 말하려면 우선은 내 병들어버린 마음부터 도려내야 할텐데.
- 2017년 4월 2일
예쁜 것들을 보면 입을 맞추고 싶더라 사랑스러운 것들도 그래 저지선 너머에 걸린 그림에 그리트의 눈빛에 테세우스의 발가락에 부서지는 아드리아 해안에 파리 길바닥의 지저분한 냄새에 인상파의 그림을 닮은 센 강의 야경에 솔직한 말을 하는 입술에 들뜨고 싶은 밤에는 술에 취해서 다정함에 기대서 그런 키스들은 에로틱한 것보다는 로맨틱한 것이지, 그러니 더 많은 사람들과. 굳이 애인으로 이름붙이지 않는, 애인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의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뺨을 감싸안고 귓가에 쪽 소리를 남기고 정확하게 입술에 입맞춤을 남기고
손을 잡는 건 사랑한다는 고백이야
경계를 흐리는 나의 세계에 다정으로 당신의 손을 잡고
모럴이 없다는 건 사실 자신만의 모럴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지 경계를 흐리려거든 이름을 지우려거든 더 정확히 말해야 하는거야, 그래서 파고들어 당신의 욕망하는 바를 묻는다 그것으로 기준을 세울거야, 나의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아 반대로 내게 묻는다면 우리 경계 없이 엉켜 다정해질까
언제부터인가는 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조금쯤 미래를 기대하게 되었어 당신이 내 손을 잡아주었기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들뜬 밤이 지나면 감각같은 확신이 돋는다 그것을 붙들면 살아갈 수 있다
- 잠들기 직전, 넘치는 말들을 그러모아 쏟아냈던 것이라 자꾸만 불만이 생긴다. 원래는 더 많이 쓰고 싶었던 일기였는데, 이렇게 털어버리려던 생각이 아니었는데, 더 잘 쓸 수 있는데. 그래도 좋은 일기라는 평을 들었으니 조금 더 어울리는 곳에 기록해놓는다. 조만간 더 설명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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