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에 붙여

-/신뢰의 습작 2021. 2. 23. 01:07

신뢰의 습작 07번은 이렇게 시작한다: 

" 신뢰의 습작의 여섯 개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첫 번째 글은 결국 쓰여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지막 글을 쓸 순간이 됐다. 나는 이 글을 민근과 함께 쓰고 싶었으나, S는 더 이상 논의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명확하게 취했고, 나는 그것을 존중하기로 한다.

그렇기에 나는 S가 이 글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상정하며 쓴다. 그래야 S를 덜 상처입히기 위해 덜 쓰지도 않게 될 것이고, 반대로 그를 비난하기 위해 더 쓰지도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끊임없이 그에게 나 자신을 변명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 글이 변명이 되도록 하고싶지 않다. 어쩌면 내가 너무 뻔뻔해보일까? 하지만 그것까지도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다. "

 

2월 1일에 처음 썼고, 근 3주에 걸쳐 나는 생각 날 때마다 한 줄씩 덧붙여가며 그 글을 고쳐 썼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왜 헤어졌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헤어졌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완성인 글에 비밀번호를 걸어서 남겨놓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인데, 반드시 쓰고싶은 글은 그렇게 글빚으로 달아놔야 스스로 미루지 않고 쓰기 때문이다.

2월 22일인 오늘은 그 글을 마무리지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글을 되짚어보며 깨달았는데, 기실 내가 쓰고싶었던 것은 우리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난 2년간 함께 무엇을 했는가

관계의 시작만큼이나 끝 역시도 둘 모두의 것이어야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별은 각자의 것이 된다. 우리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그것을 함께 쓰고 싶었으나, 부득이하게 나 홀로 써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의 연애에 대해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상에 100쌍의 연인이 있다면 200가지의 연애가 있다는 말도 있으나, 나는 우리의 연애마저도 각자의 것으로 놓고 따로 서술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좋은 연애를 했다고 믿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정확하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어쩌면'으로 운을 뗐다 고쳐 쓴다. 나는 우리의 연애였던 것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내가 감히 그것을 좋은 연애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데? 내가 좋은 연애를 했다면 나는 마땅히 민근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그가 이토록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은, 내가 2년간 허수아비같은 것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뜻은 아닐까? 혹은, 이토록 낯설게 행동할만큼 민근에게 나나 나와의 연애가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너무나도 두렵다. 

지난 번 나는 민근과의 연애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민근이라는 사람을 잃어버릴까봐 두렵다고 썼다. 이제 나는 민근이라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은 둘째치고, 민근과 했던 연애마저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게 됐다. 민근이 우리의 연애를 끔찍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떡하지? 그것을 후회하면 어떡하지? 대답해 줄 사람이 없으므로, 나는 아주 오래간 이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이다. 대답 없는 이별 앞에서 이제껏 내가 그래왔듯.

 

그래서 나는 신뢰의 습작의 07번을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함께 말해야 할 것을 혼자 말할 수는 없다. 확신 없는 이야기를 혼자 쓸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는 S가 이 글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상정하며 쓴다"고 하였으나,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그 글의 유일한 독자인 S가 그 글을 읽어주길 바랐으므로, 그가 읽지 않을 글을 쓰는 것은 지금 이 순간으로서는 무용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언젠가, 그가 그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지 않을 때에는 나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으리라. 그가 우리를,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 없어지는 순간에는 우리에 대해서 홀로 말할 수 있으리라. 아마 몇 년쯤 후에는 가능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저 글은 오래간 완성되지 않은 채 잠겨 있을 예정이다.

 

채워진 제목에 대해 부연해야 한다. S의 마지막 제스처는 다소 당혹스럽고... 어떻게 해석하려고 해봐도 조금씩은 우스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디까지를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를 선택했는지 짐작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당사자가 말하지 않은 것을 넘겨짚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러나 일련의 사건 - 작년 말부터 - 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인상을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나는 그가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무엇인가를 잘라내고 도망쳤다고 여긴다. 내가 튕겨나갔던 것 처럼, 민근도 견디지 못해 튕겨나가버린 거라고 생각해.

만약 그것이 침착하게 내려진 결정이라면 S는 더 이상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고, 내 트위터를 보거나 이 티스토리를 방문하지도 않을 것이다. 차단한다는건 그런 뜻이거나, 적어도 그런 포-즈를 취하겠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만약 민근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에게도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무엇인가가 남아있다는 뜻이라고 감히 넘겨짚어본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해소하고 정리하기 위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이 글을 읽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한참 후의 언젠가라도) 나는 내가 대화의 테이블을 떠나지 않고 있을 것임을 알려주고 싶다. 민근은 원한다면 내가 민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지만, 나는 민근이 나에 대해 -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는 다소 억울하게까지 느껴지는 정보의 비대칭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기장을 투명하게 열어두는 것은 그런 의미다.

내가 늘 애인이었던 사람에게 남겨두는 약속을 이번에도 반복한다. 설령 그가 결코 다시는 자신이 걷어찬 대화의 테이블에 돌아와 앉을 일이 없을지라도, 이 약속이 그에게 아주 희미한 위안이 되어줄 수 있길 바라며.

'- > 신뢰의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07 대화의 테이블  (0) 2021.02.01
06 - 사랑의 대계율  (1) 2020.12.25
05 그럼에도 불구하고  (0) 2020.12.23
04 신뢰의 습작 - 나는 오늘을 기쁜 날로 기억할거야  (1) 2020.11.29
03 신뢰의 습작 - 유리구슬  (0) 2020.11.18

07 대화의 테이블

secret 2021. 2. 1. 23:59

.

"필연적으로 사랑 앞에서는 패배할 수 밖에 없다"

보다 철저하게 패배했었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 마음을 말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했던 당신의 노력이었음을 생각한다. 미운 소리를 하는 당신의 마음도 영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받은 것들이 수없이 많아 결국 내가 이렇게나 안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음을 생각한다.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노력했던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야했다. 그렇게 변해버린 마음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닳아지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를 생각해야 했다. 그 시간이 우리가 함께 연애라고 부르던 시절에 있었다는 것은, 홀로 식었다고 당신을 비난할 빌미 삼을 것이 아니라, 애인이 곁에 있었음에도 혼자 그러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해야 했다.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니, 당신을 탓할 수 없게 됐다.
좋은 사랑을 받았었다, 나는. 그 사랑이 닳아지기까지 당신 참으로 힘들고 외로웠겠구나. 미안해.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전히 당신 안에 내가 있기를. 연애는 아니어도 좋으니, 이전만큼 귀하고 소중하지 않아도 좋으니, 당신 안에 내가 조금이라도 있기를. 그리하여 내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를. 당신이 어느 순간 나를 필요로 하기를, 그때 내가 당신에게 우산을 씌워줄 수 있기를.

Told you I'll be here forever
That I'll always be your friend
Took an oath Imma stick it out 'till the end

이 약속을 나는 잘 간직하고 있을테니,
희미해지는 수많은 약속들 사이에서 당신도 오직 이것만은 놓지 말았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라.

Know that we still have each other
You can stand under my Umbrella

 

 

'- > 신뢰의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07에 붙여  (0) 2021.02.23
07 대화의 테이블  (0) 2021.02.01
05 그럼에도 불구하고  (0) 2020.12.23
04 신뢰의 습작 - 나는 오늘을 기쁜 날로 기억할거야  (1) 2020.11.29
03 신뢰의 습작 - 유리구슬  (0) 2020.11.18

12월 23일, 민근을 만나기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지금의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미리 적어둔다. 한 달 후에 민근에게 할 이야기들이다.

민근을 사랑한다.

왜? 알 수 없다. 나에게 사랑은 관성이다. 한 번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그 마음이 끝나지 않았으니 달려간다.

되짚어보면 달려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다.

민근이 나의 유일한, 최선의 good place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미 민근과 이야기했지만, 다자연애가 아니더라도 민근과의 결혼은 다시 한 번 검토해봐야 했을 것이다. 어제 상담을 하며 생각했다. 민근과의 관계는 피곤했다. 민근은 잔소리가 많고, 민근과 함께 있으면 늘 평가받는 기분이 됐다. 많은 것이 무던한 나와 달리 민근은 많은 것에 예민하고 쉽게 피로해지며 그럴 경우 날카로워진다. 우리의 시간은 주로 민근을 중심으로 흘렀다. 우리 사이의 권력구도가 기울어져 있던 것은, 여러 모로 아주 명백했다.

물론 민근과 함께 있는 것은 행복했다. 연애가 가져다주는 행복도 있었고, 민근이기에 가능했던 행복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행복했나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불행의 요소를 따져보는 것은 쉽지만 행복의 요소를 낱낱히 밝히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근으로만 내가 행복할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힘 있는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렸다고 여긴다. 민근과의 연애에서 내가 있는 힘껏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민근이 좋은 사람이고 좋은 애인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고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그를 민근만큼 사랑할 것이며, 그와의 연애 역시 민근만큼은 행복할 것이다. 민근을 놓치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크고 지극한 행복의 기회를 없애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근과 함께 행복하기를 선택하고 싶다. 왜냐하면


민근에게 화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한 민근의 신뢰가 깨진 만큼, 민근에 대한 나의 신뢰도 깨졌다.
민근은 다자연애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우리 관계의 지속가능성과 안정성을 해치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약속들이 필요한 거라고. 그리고 그 약속을 깨뜨린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 이후, 우리 관계를 보다 오래 지속하기 위해 했던 크고 작은 수많은 약속들을 차근차근 번복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었던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들 중, 다른 사람과 키스하지 말자는 그 약속이 우리 관계를 잘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자는 약속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던가? 이토록 쉽게 식어버린 민근의 마음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달려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민근에게 다시금 무엇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니까. 민근에게서 받는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을 기대하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 사랑에 대한 신뢰는 이미 깨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 번 민근과 함께하기를 선택하고 싶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민근을 사랑하니까. 내 마음속에, 조금은 지치고 서글퍼 풀 죽어 있지만, 그래도 민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으니까.
그래서 민근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바로 내가 민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를 바라니까.


하고싶었던 것들을 하지만, 재미있지가 않다. 민근이 없으니까 그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이라도, 민근이 없으니까 재미가 없다. 나의 옳음이 너의 있음 앞에서는 무의미해지는 순간, 에 대한 어떤 글을 떠올린다. 민근은 어떨까? 그가 원하던, 남들 다 하는 결혼을 남들 다 하는 나이에 하는 삶은, 단원이 없어도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민근은 나에 대한 마음이 벌써 빠르게 식었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내가 없이도 행복할까?
이 아픔은 지극히 사랑했던 마음을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겪을 당연한 부침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흔히 하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래 오르내리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경험적으로도 사실이다. 열심히 사랑했던 만큼 부침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 언젠가 괜찮아질 것을 안다. 민근이 없더라도 나는 아주, 잘, 살 것이다.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민근을 사랑하는 마음 앞에서 좀 더 철저하게 패배하고 싶다.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민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민근과 함께 있기를 선택하고 싶다. 그것을 위해 내 어떤 가치관이나 가능성들을 모조리 내려놓을 각오를 한다.
A의 말을 빌려, "나를 위해 네 무엇을 포기해줘" 라고 말하는 대신, "너를 위해 내 무엇을 포기할게" 라고 말할 준비가 됐다.

얄미운 마음으로 굳이 붙이고 싶다. 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어. 그리고 지금도, 아마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해.
어떤 필연적 이유는 없이, 그저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선택할거야.

나는 오늘을 기쁜 날로 기억할거야.

민근과 - 애인과, 라고 쓰려다 정확하게 쓰기 위해 고쳐 쓴다 - 첫 커플 상담을 다녀왔다. 상담에서 민근은 "나는 다자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 말했다. 갑각류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을 수 있지만,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동시에, 민근은 나에게 독점적 연애를 요구하지 않고자 한다. 왜냐면 단원은 독점적 연애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민근은, 우리가 이 관계에서 연애라는 이름을 벗겨내더라도 여전히 좋은 것들을 나눌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늘 이별을 앞두고 애인들에게 하던 약속을 민근에게도 주었다. 내 심장 가까운 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거기에 있듯) 민근의 자리가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나는 여전히 민근을 사랑할 것이며, 민근이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내어줄 수 있다면 언제건 무엇이건 기꺼이 내어줄 거라는 것.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민근에게 나눠주고자 할 것이고, 내 중요한 순간들을 민근과 공유하고 싶어할 거라는 걸.


지금 당장 내려가지는 않기로 했다. 좋은 이별은 없다지만, 덜 나쁜 이별을 위해서. 먼저 커플 상담을 꾸준히 받고 (상담 선생님은 다섯 회기 정도면 될 거라고 말해주셨다) 민근이 내게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고, 민근과의 약속을 깨뜨린 것에 대해 내가 충분히 진심으로 사과하고 민근이 그것을 용서할 수 있을 때에야. 그래야지 우리가 여전히 친구일 수 있을테니까. 그래야지 우리가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민근과 나는 손을 잡고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잘 올라간 다음에야 내려가기 시작하자. 그 끝에 뭐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남아있을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이렇게 덜 나쁜 이별을 준비하자.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서로의 선택을 응원해주자.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그런 약속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을 기쁜 날로 기억할거야.

'- > 신뢰의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06 - 사랑의 대계율  (1) 2020.12.25
05 그럼에도 불구하고  (0) 2020.12.23
03 신뢰의 습작 - 유리구슬  (0) 2020.11.18
02 신뢰의 습작 - 완두콩  (0) 2020.11.16
01 신뢰의 습작 - 애인에게 (미완성)  (0) 2020.11.16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깨지지 않을 마음을, 다시

-. 오빠와도 B와도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일종의 원죄의식 탓이었다. 오빠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떨칠 수 없을테고, 마찬가지로 B를 볼 때마다 우리가 잘못 시작했다는 생각에 석연치 않을테니까.

-. 오빠와 다시 친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일을 지난 일로 놓는 연습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과와, 눈물과, 노력과, 용서와, 시간이 필요했다.



-. 요 며칠 민근과는 모든 여유 시간을 쥐어짜내 관계-대화를 해왔다. 거기에 Y와의 편지까지 더해져, 두 개의 관계-대화를 조율하는 것은 몹시 피로하고 마음이 닳는 일이었다. 이따금 지칠 때면 둘 다 그만둘까?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민근은 내가 자기와 헤어진다면 거리낄 게 없이 Y에게 달려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어떻게 그래. Y를 볼때마다 민근과의 약속을 깨뜨린 것을 계속 생각하게 될 텐데.

-. B와 헤어졌을 때 나는 마음 한켠으로 안심했다. 아, 이제 그 부채감과 죄책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reset으로 여겼다. 그리고 지금도 궁지에 몰린 기분이 되어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리셋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 왜 나는 항상 모든 것을 망쳐버릴까? 왜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을 상처입힐까? 왜 나는 늘 실패할까? 그런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민근은 나에게 다시 한 번 그와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말할 때 민근이 내게 준 것은 단순히 하나의 연애를 연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 그것은 내 실패 경험을 만회하는 경험, 한번 망쳐버린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 내가 망쳐버린 것을 다시 한 번 잘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가 항상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



-. 나는 민근에게 사과했고, 민근은 나를 용서했다. 그리고 민근은 Y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Y를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러나 나는 Y가 민근에게 사과할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여긴다. 왜냐면 Y는 나와 민근이 서로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는 선을 약속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성립 불가능하며, 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민근과 내가 협의한 바이고 Y 본인의 동의가 없었던 내용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기에 우리의 선은 Y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Y는 (나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논의할 때) 자신은 그 선을 존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민근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선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것은 Y가 민근에게 사과할 일이 아니다.

-. 민근은 Y의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나와 Y의 관계가 나와 민근과의 관계와 병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은 후, Y는 내게 친구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 처음에, 나는 얄팍하게도 안도했다. 아, 약속을 깨뜨리며 촉발된 관계는 끝났다! 이제 reset할 수 있다. 이렇게 Y와의 관계를 일단락하고, 민근과의 합의를 잘 끝내면, 나중에 Y를 다시 만날 때 새롭게 무엇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이 죄책감을 가지고 가지 않을 수 있다. 왜냐면 내 마음에는 여전히 Y와 무엇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으므로.

-. 그러나 민근은 내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게 아니라, 기존의 관계를 계속하는 것이니까. 민근은 Y가 사과하기 전까지는 나와 Y의 관계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Y는 민근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또 나는 민근과 헤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적어도 민근과 사귀고 있는 동안은 - 그러니까 앞으로 정말 오랜 시간동안) Y와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 민근은 앞으로 나와 관계의 선을 넓히더라도,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아주 다정한 친구가 되거나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Y와만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Y와의 관계를 도모하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지점에서 나는, 반대로, 민근에게 내 감정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또한 민근이 말하는 관계의 원칙은 성립할 수 없다고도 느꼈다.



-. 내게는 원칙의 문제, 당위의 감각이 몹시 중요한데; 민근은 내가 다른 사람과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을지 그 범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일기를 쓰는 지금 이것을 보다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민근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할 수 없다. 그것은 민근이 허락할 일이 아니다. 다만 민근은 자신의 마음, 자신과 나의 관계와 병존할 수 있는 내 다른 행동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나는 민근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조건을 존중하기로 한다. 우리의 관계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성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 조건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민근과 나는 이를 일종의 원칙과 약속의 형태로 정리한다.

-. 일전에 민근과 나는, 우리들의 관계-원칙을 세부적인 케이스에 따라 나눠서 접근해보자고 말했다. 예를 들어, 민근은 헤테로섹슈얼이므로 내 여자 애인에 대해서는 남자 애인보다 거부감이 덜 든다고 말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론적인 원칙을 세우기 어려울 때는, 개별 케이스를 경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관계-원칙의 지형도를 좀 더 명확하게 해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 그러나 이렇게 개별 케이스로 접근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아직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대원칙을 세우기 어렵기에, 경험하지 않은 마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빗나갈 수 밖에 없는 일이므로, 나조차도 투명하게 알지 못하는 내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모든 관계-원칙을 케이스로 만들 수는 없다. 왜냐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미리 알고 약속할 수는 없고, 전제할 수 없는 상황들은 얼마든지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어떤 상황이 닥칠 때마다 민근과 그에 대해 협의하는 것은 결국 통보하고 수용하는 형태가 되거나, 간청하고 허락하는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의 관계를 돌이켜 보면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것이 올바른 관계의 형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민근과 나는 우리 중 누군가가 다른 사람과 새로운 연애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일 때 우리 관계와 병존(혹은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민근은 내가 '어떤 누구와' 연애할 수 있거나 없거나 하는 것을 고를 수는 없다. 만약 민근과 내가 새로운 (연애)관계의 가능성에 대한 원칙을 세운다면, 그것은 민근이 더 좋아하는 사람이면 가능하고 덜 좋아하는 사람이면 불가능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가 이제까지 함께하고 이해해온 바에 따르면, 민근은 내가 데려온 사람이 엄-청-난 쓰레기거나 심지어 본인과 원수 관계였더라도 나를 걱정하고 불쾌해할지언정 그 관계를 강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원칙적으로 민근은 내가 어떤 친구를 만나는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는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본인도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 왔다. 오직 Y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 그리고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원칙은 어떤 경우에건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예외로 두어서는 안 된다. 민근과 나는 논의를 꽤 진척해왔고, 민근은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다정한 키스를 때로는 섹스를 나눠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 원칙을 민근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대상에게만 적용하거나 적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간청하고, 민근은 허락하는 구도가 된다. 그것은 동등하지 않다. 나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 원칙에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말을 뒤집어서, 나는 예외를 두지 않아도 좋을 만큼만 원칙으로 정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내가 친구와 손을 잡고 나란히 잠들 수 있다면, Y와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Y와 그럴 수 없다면, 다른 친구와도 그러지 않는 것이 낫다. 그렇기에 나는 민근이 Y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유로 우리의 원칙(을 맺는 방식)과 내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 민근은 나와 '관계-대화를 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내가 그간 괴롭게 견디는 기분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난 이후 몇 주간을 다소 조급하게 관계-대화를 진척시켜왔다. 물론 매일같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고, 우리의 관계가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보다 단단해지고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대화였다. 그러나

-. 실상 우리는, 정말 중요한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않고 그래왔던 것이다. 민근에게는 여전히 Y가 문제였던 것이다. 내가 Y와 했던 일이 문제되었던 것이다. 나는 사과했고, 민근은 나를 용서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민근의 마음은 아직 충분히 괜찮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시트 사이에 낀 완두콩과도 같다. 왕비는 침대에 완두콩 한 알을 놓고 그 위에 매트리스 스무 장과 솜털 이불 스무 장을 깔아 공주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공주에게 잘 잤냐고 묻는다. 공주는 완두콩 한 알이 불편해 밤새 뒤척였다고 답한다.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문제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 위에 아무리 겹겹이 매트리스를 올려놓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끝끝내 우리를 뒤척이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해야 할 일은, 매트리스를 무겁게 올려 완두콩을 눌러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완두콩을 꺼내버리는 일이다.

-. 민근이 바라는 대로 Y의 사과를 받을 수 있다면 이 일이 좀더 수월하겠지만, 그럴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Y의 몫으로 무기한 보류할 수 없다. Y는 이 이야기가 세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절했고, 나와 친구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이다.

-.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때 까지, 당분간 우리의 관계의 선을 넓히는 문제를 보류하기로 요청할 것이다. 민근에게 Y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때까지, 내가 다른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을 Y와도 나누는 것이 민근의 마음에 '허락하지 않고 싶은' 기분을 불러오지 않을 때까지.

-. 당연히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해. 민근은 그 일이 자신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이후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를 볼 때마다, 내 다른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또 Y를 볼 때마다 민근의 트리거가 눌린다면 우리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것은 민근과 나, 모두에게 해롭다. 시간과, 노력과, 눈물이 필요할 것이다. 아주 많이.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해. 그래야 우리가 다음 페이지로 나아갈 수 있다.



-. 민근과 내가 관계를 맺는 방식이, 적절하고 건강한 것일까? 민근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가 민근이 원하는 보편적인 관계를 기본값으로 놓고 출발해 내가 원하는 특수한 예외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민근은 시혜자고, 나는 그의 이해와 애정을 수혜받는 사람이라는 기분을, 나는 가해자고, 민근은 피해자라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마지막 지적은 타당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때로 민근이 나에게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을 요구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실체 없는 불안에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완두콩을 잘 꺼낼 때, 내가 잘 사과하고 민근이 나를 잘 용서할 때, 이 기분에서도 놓여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01 신뢰의 습작 - 애인에게 (미완성)

secret 2020. 11. 16. 18:31

.

후회의 습작에는 후회하지 않을 일들만 적는다, 후회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고 적었던 바 있다. 최근, 바로 어제까지의 일기 역시도 그렇게 시작했다.

 

-- 정말 후회하지 않는가?

 

이제와서야 덜컥, 그 모든 것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________ 하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빈 칸에는 어떤 말을 넣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후회하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부서뜨리지 않았었다면 좋았을걸. 그때 그러지 말걸, 하는 기분이 드는가? 맞아. 하지만 그 때, 그 순간의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나? 지난 어떤 일기에 나는 그것을 "내가 나 자신일 수 있었던 순간"이라고 적었다. 맞아, 어쩌면 오빠와의 관계 중에 나는 그것이 절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S와의 관계에서도? 지난 몇 주 간의 내게 왔던 순간들이 그런 것이었을까? "하고싶은 것을 망설이지 말아요" 라는 속삭임은 너무나도 달았다. 얼마 전 R 선배는 내가 자꾸만 '무언가를 깨뜨리고 싶어하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 양육환경으로부터 왔었으리라 짐작된다고 말했다. 지난 인생을, 그러니까 내가 지금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열 다섯 살 이후로의 열 다섯 해를 되돌아봤을 때 나는 늘 내가 하고싶은 것을 끝까지 밀어붙여본 적 없는 상태에 잠식당해 있었다. 내가 품은 욕망들은 대개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었고, 내가 감히 그런 것들을 욕망할 자격이 있는지 늘 허락을 구하려고 했으며, 그 욕망을 표현했을 때 거절당할까 두려웠다. 나는 늘 내 욕망을 **선언**하고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애써야만 했으며, 내 연애들은 내 욕망 - '정체성' - 과 길항해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러던 와중 어떤 사람들이 - 내 욕망을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나를 욕망하는 방식으로 내게도 그를 욕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듯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순간 나는 늘 무너지는 마음으로 튕겨나갔다. 왜냐면 그건 너무- 너무- 자유로웠으니까. 애인은 내가 Y와 있을 때 그가 주는 "짜릿함"에 몸을 맡겼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기실 내가 느꼈던 것은 육체적인 짜릿함은 아니었다. 나 자신을 치열하게 증명하지 않아도 나를 긍정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경험은, 내게는 너무나도 드문 것이었단 말이야. 폴리아모리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 이후, 독점적 연애 중 내가 저울에 올렸던 것은 내 애인과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내 애인과 나 자신, 애인을 사랑하기 위해 나를 죽이고 싶던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NX는 이번 이야기를 전해듣고 "단원은 지난 시간에서 배운 것이 없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상 NX야말로, 당사자인 S를 제외하면 가장 내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오빠는 나를 용서했지만(그래서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있었지만) NX의 일부는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했거든.

 

나야말로 그것이 무섭다. 나는 정말 배우는 것이 없는 사람인가?

 

어떤 순서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감히 두 사람의 이름을 내 연애의 역사에 넣어도 된다면:

 

( ㄱㅅㅇ : ㄷ ) - ( 오빠 : B ) - ( S : Y )

 

대개 전자는 헤테로섹슈얼-모노아모리였으며, 연애에 충실했고, 내게 주는 것이 많았으며, 그렇게 내게 안정감을 주었지만 반대로 원하는 것도 많았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늘 미지근한 물에 턱끝까지 잠겨있는 압박감을 느꼈다. 한편 후자는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같은 것을 보여주었지만, 그만큼 쉽게 나를 비난했고 나를 불안정하게 만들었으며 무례하게 떠났다. (그리고 모두 예술-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낄낄 웃었다) 전자에서 후자로의 관계로 이행할 때, 나는 늘 - 자각하지 못했다고, 혹은 아무리 절실했다고 하더라도 - 관계에서의 신뢰를 깨뜨렸다. 모노아모리 식으로 납작하게 말하면 바람을 피웠다든가, 환승이별이라고 비난받을만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정말 배우는 것이 없나?

 

조금은 나아졌다. 월요일 밤, 나를 멈췄던 것은 무엇일까. S의 마음이었을까? 혹은 "약속을 어겼다"는 당위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L의 이슈가 있었을 때 NX는 내가 평생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욕망하며 허덕일거라고 했다. 매 순간 나를 움직였던 짜릿함은 거기에서 왔다. 이번에 조금 더 잘 멈출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고, 지금 이 순간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또다시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S의 마음에서 눈을 돌리고 내가 찾았던 것은 Y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인정욕구였다. 그리고 그간 (많은 부분 S 덕분에) 내 마음이 조금은 더 건강해졌으므로 조금 덜 가서 멈출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끈질긴 인정투쟁을 내려놓지 못하는 한, 나는 영영 이런 순간들에 튕겨나가버리고 말까?

 

이쯤 이야기를 듣고 NX는 내가 "뭔가를 배웠다"고 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후회하지 않는가? 모르겠다. '그 때로 다시 간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고 말할 수 있을까? 확신이 없다. 다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절실하게 바란다. 신뢰를 깨뜨리는 방식으로 나를 내던지지 않더라도 나를 증명하고, 내 허덕이는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끔찍하리만치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이제는 후회의 습작이라는 이름 아래 일기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기장의 이름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신뢰의 습작>, 내가 다른 사람과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고도 나를 잘 쌓아가기를 바라며, 내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 > 후회의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확한 욕망의 실험 (미완성)  (0) 2020.10.24
200513  (0) 2020.05.13
draft  (4) 2018.06.10
연습하는 일기 : 나  (1) 2018.05.21
PW : thinkofmeee  (1) 2018.05.17

- 애인과 다수 연애를 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독점적-배타적 연애관에서 살짝 비껴나가 있었으므로 이미 다자연애의 스펙트럼에 놓여있었고, 그래서 애인은 이를 다자연애를 합의한 것이 아니라 다수연애를 합의했다고 명명했다.

- 나는 무엇을 하고싶을까?

- 이제까지 나는 가능한 한 멀리까지 뻗어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어차피 내 한 쪽은 애인에게 붙들려 있었으므로, 한쪽엔 애인의 손을 꽉 잡고 있는 상태에서 반대쪽으로 손끝을 쭉 뻗어내어 가능한 한 멀리 닿고 싶었다. 나는 종종 "저울에 올린다"는 표현을 썼는데, 내 저울은 그 무게가 어떻든 이미 애인의 마음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투정부리는 마음으로 반대쪽에 이것저것을 올려놓았다. 내 괴로움, 무엇을 하고싶은 마음, 이런저런 것들을 잔뜩. 그런데 막상 그 고정쇠를 풀어버리고 "정말로" 저울 양쪽의 무게를 재야 하는 상황이 되자 덜컥 무서워졌다. 내가 너무 많이 올려놓은 나머지 반대쪽에 놓인 애인의 마음과 괴로움이 튕겨나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무엇을 올리거나 덜어내며 우리 관계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너무 많은 것들을 와르르 올려버릴 수는 없는데. 지금 내 손에 쥔 것이 정말 무게를 달아야 할 것인가?

- 그러니 나는 이제야, 애인을 잃어버릴 것이 무서워진 것이다.

-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 무엇을 더 하고싶어진다기보다는, 하지 못하는 것이 없어져서 좋았다. 종종 너무너무 좋아서, 눈 앞의 사람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벅차오를 때는 상대방도 그것을 원할까? 다음에 애인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 마음을 억누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닿고 싶을 때는 닿을 수 있다! 이제 누군가를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되고 때로 입 맞추고 싶을 때는 입 맞출 수 있다. "상대방과 무엇을 하고 싶을 때는, 오직 우리 두 사람 사이의 합의만이 중요하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회적인 통념이나 관습적인 관계 양상을 고려하지 않고. 선을 흐리는 것, 경계를 밟는 것, 그래서 "자유로워"지는 것 - 혹은 그렇다고 착각하는 - 것.

- 그래서 그렇게 자유로워 졌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싶을까?

- 자유롭다는 것, 다시 말해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실상 괴로운 일이다. 무엇이건 다시 검토해야 하고, 솔직하게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좋은 핑계가 됐다. 너랑 연애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됐거든. "애인과 합의가 되지 않았다"도 돌려 말하기 좋은 멘트였다. 너랑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명확하게 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 그러나 타인의 욕망에 응하거나 거절하기 이전에, 나는 내 욕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 애인은 "내 애인은 왜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고싶을까?" 하고 말했다. 또 "나도 새로운 사람과의 섹스가 주는 짜릿함을 알아요(그래서 단원이 왜 그걸 하고싶어하는지 이해해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섹스가 하고싶을까?

- 나는 왜 더 많은 사람들과 섹스가 하고싶을까?

- 한때는 누군가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방식으로 내 자존감을 채우고 싶어서 허덕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때때로 여전히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주는 간질거리는 즐거움이 좋아서 틴더를 다시 깔아볼까 하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나는 이전만큼 허덕이지 않는다.
- 한편 섹스(연애)는


- 끝맺지 못한 글이지만 공개해둔다

'- > 후회의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회의 습작?  (0) 2020.11.12
200513  (0) 2020.05.13
draft  (4) 2018.06.10
연습하는 일기 : 나  (1) 2018.05.21
PW : thinkofmeee  (1) 2018.05.17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