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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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17 2015년 2월의 첫 기록
(2016-01-17-08:59)

  토론토의 하우스604 생활은 아주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그 이후 밴쿠버에서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주거를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친구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단지 몇 년이 아니라 평생,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과 삶을 공유하면서?
  설득력있게 보이기 위해 어쩌면 불필요한 지점들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리고 지금과는 조금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이것은 가족이나 가족공동체에 대해 내가 남긴 첫 기록이다. (당시 일기장에 적었던가, 마무리를 못 지었다고 생각해서 그냥 뒀다 잊어버렸던가?) 

  다자연애주의를 선언한 것은 이 기록보다 나중의 일이고, 가족(들)의 타운하우스를 가족의 셰어하우스로 만들자고 마음먹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맹랑하지만 허무하지는 않은 가족서사의 원형을 꼽으라면 이 글이 될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나서 올려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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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2일

  늘 가족들과만 살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삶의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아주 많이 한다. 독립할 수 있게 된다면 X와 1년정도 함께 살아보자고 약속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는 '공동체'가 좋다. 나중에 크면 내 가족이라기보단 내 '공동체'와 함께 살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타운하우스같은거야, 같은 건물에 나와 내 친구들 몇 가족이 같이 사는거지. 음, 여섯 가족 정도? 아마 내 친구들이라면 내 배우자를 좋아해주겠지! 그리고 나는 분명히 내 친구들의 배우자들을 좋아할 것이다('남편'과 '아내'라는 단어를 썼었는데, 너무 이성애중심적인 표현인 것 같아서 '배우자'로 고쳤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의 논리이기도 하지만, 아마 우리는 - 나와, 나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내 친구들은, 아마도 우리와 같은 결의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래, 나는 우리가 우리를 좋아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 나오는 가족혼이라는 형태의 결혼과, 그렇게 만들어지는 가족이라는 커다란 공동체가 좋다. 가족혼까지는 못 되겠지만, 이렇게 함께 살면 아마 우리는 좋은 친구 이상으로 정말로 가족이 될 수 있을거야. 타고난 가족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가족.
  그냥 빌라와 다른 점은 어느정도 삶의 공간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위층엔 각 가족마다의 독립된 주거공간이 분명히 있지만, 1층의 공동 거실과 부엌, 정원, 그리고 지하의 서재나 DVD룸정도는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이 아주 많아야겠지!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서 돈을 아주 많이 벌자. 삼십대 후반정도에는 가능할까?

  단순히 낭만적인 꿈만은 아니다. 이 대안적인 형태의 가족은 아주 합리적인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일단 수도와 전기를 공유하고 세탁기나 냉장고를 공유하게 되니까 장기적으로는 생활의 비용이 줄어들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식료품 장도 마찬가지고. 또 가족들의 역할을 보다 넓게 나눠 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아이를 픽업해야 하지만 급하게 맡길 곳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이 대신 돌봐 줄 수 있고, 내 배우자가 아플 때 내가 출장을 간다면 나 대신 간호해 줄 사람들이 있으며, 여행을 떠날 때 내 반려동물을 맡길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내 책임을 나누는 대신 남의 책임을 나눠 져야 하므로 책임의 총량은 같을지 모르겠지만, 1보다는 1/6 * 6이 훨씬 안정적이잖아. 일종의 공동체적인 안전망이 되어주는 셈이다. 물론 나쁜 일 뿐만 아니라 좋은 일들도 여섯 배로 일어나겠지! 책도 여섯 배가 될거고! 치킨을 먹을 땐 한 번에 여섯마리씩을 주문해야 할 테니 쿠폰이 빨리 모이니까 개이득! 먹고싶은 피자 두 개를 놓고 고민할 때 둘 다 시켜도 되니까 개이득! 또 아이들에게도 좋을거야. 우리 아이들에게는 두 명이 아니라 열두 명의 부모가 생기는 셈이니까, 두 가지가 아니라 열두가지의 다양한 가치관과 시각에 대해서 배울 수 있을것이다. 또 우리는 각자 다른 것들을 가르쳐 줄 수 있을테니까, 가정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좋다. 그 애들은 같은 배경과 기억을 가지고 더불어 자라는 친구들을 가지게 될 테고. 
  어렸을 때 이모네 가족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나이차이가 거의 없던 또래의 사촌들과 우리는 넷이 나란히 소풍을 갔고 이모에게 수학을, 이모부에게는 영어를 배웠고 그게 부끄럽다는 걸 배우기 전까지 함께 목욕을 했다. 막내이모는 사촌들 여럿을 함께 데리고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엘 갔고, 열 명쯤 됐던 우리는 큰외삼촌 댁 다락방을 기어올라가며 다함께 벡터맨 놀이를 했다. 엄마네가 여덟 남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핵가족이 보편적이지만, 대안가족은 이런 대가족이 가진 어떤 이점들을 충분히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결혼과 양육을 너무 당연하게 놓는 것 같지만, 사실 이성애적 결혼과 출산 양육만이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라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가장 흔한 형태의 가족이라서 예를 든 것 뿐이지 (그리고 내 자신이 아기들을 셋쯤 낳고싶다고 생각하니까) 비혼 독신인 친구도 좋고, 딩크족인 친구도 다 좋아.

  물론 이 공동체적 삶에는 아주 확고하고 단단한 근거가 필요하다. 공산주의가 성립하기 위해, 또 안정적인 다자연애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근거. 우리의 우리에 대한 애정이 그 근거가 되어주겠지. 예를 들면, 다 모은 쿠폰으로 치킨 시켜먹으려고 힘든 야근을 끝내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쿠폰이 사라졌을 때, "이거 누가 먹었어?" "아까 점심때 배고파서 나랑 뫄뫄가..." "잘했어" 하고 화내지 않을 정도의 애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좀 어려운 조건인가.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몇가지 희망사항이 있는데 :

  첫째, 먹는걸 좋아했으면 좋겠고 너무 건강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요리를 잘 하면 더 좋고. 가끔 내가 밤 열두시에 라면 먹고싶다고 찡찡거리면, "참아. 살쪄. 내일 먹어. 과일 먹을래?" 하는 대신 기꺼이 치즈 두 장이나 넣은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베이킹을 잘 하면 나는 옆에서 도와주고 설거지를 해 줄 수 있을텐데.

  둘째,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왜냐면 내가 못하니까. 햇볕 좋은 주말 오후에 거실에서 뒹굴고 있다가 '피아노 쳐줘' 하면 익숙하게 한두 곡 정도는 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아니면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누군가는 박자를 맞추고 누군가는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나? 나는 행복하게 귀 기울여서 들을거야. 탬버린정도는 칠 수 있다.

  셋째, 자기만의 분야를 가지고 있고, 약간의 덕후끼가 있었으면 좋겠다. 밤새 호빗과 반지의 제왕 영화 여섯 편을 시리즈로 보자는 제안에 질색하지 않고, 디즈니 노래를 틀면 같이 듀엣을 불러주고(그런 의미에서 P가 있던 동연실이나 토론토의 하우스 604는 완벽한 곳이었다), 영도월드의 드립을 센스있게 받아주고 '라임'을 볼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면 좋을거야.

  넷째,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맛있게 섞을 줄 아는 사람이면 더욱 좋다......

  다섯째, 자신을 위한 '사치스러움'을 너그럽게 용인할 수 있는 사람일 것. 이북 대신 양장본의 책을 산다거나 손이 많이 가더라도 우유를 끓여 밀크티를 만드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일 것. 아무 일정도 없는 날, 아침부터 예쁘게 머리를 손질하고 공들여 화장도 하고 제일 아끼는 옷을 꺼내 입고 거실에 앉아 종일 볕을 쬐는 하루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일 것. 쓰지 않으면서 모아두는 버블바스나 향초를 쓸데없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 예쁜 컵을 보고 사고싶다고 말할 때 '집에 많잖아' 하고 말하지 않는 사람, 밥을 굶으면서 똑같은 공연을 세 번째 보러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